쉴 공간 부족하고 얼음물 등에 의지하며 강행군

일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는 ‘폭염 주의보’, 35도 이상인 상태가 이어질 때는 ‘폭염 경보’가 내린다. 정부에서는 폭염 경보가 울리면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질 것을 권고하지만 현장 배송 기사들은 이는 정말 ‘권고’일 뿐 알아서 재량껏 쉬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유일한 휴식처인 ‘차 안’, 에어컨 켜도 ‘3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
택배, 마트 배송 등 화물차로 배송하는 기사들은 “쉴 시간도 없지만 마땅히 쉴 곳도 없다”며 차 안이 유일한 휴식 공간이라고 말했다. 

유일한 휴식 공간인 화물차의 상황은 어떨까. 차 안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미리 설치해 둔 온도계의 숫자는 외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전기차로 마트 배송하는 A씨는 에어컨을 켜고 움직이는 반면 경유 차를 운행하는 택배기사 C씨는 에어컨이 아닌 창문을 다 열어둔 채 배송에 나섰다. 

택배기사 C씨는 “에어컨을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동을 켜놓아야 하는데 이는 차량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소음, 매연 등을 일으켜 민원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에어컨을 작동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며 “창문을 다 열고 바람을 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7일 오후 4시 기준 바깥 온도 35도(왼), 같은 시각 차량 내부 온도는 34도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물류신문)
7일 오후 4시 기준 바깥 온도 35도(왼), 같은 시각 차량 내부 온도는 34도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물류신문)

전기차를 운행하는 A씨는 전기차만의 강점으로 인해 에어컨을 켰지만 쏟아지는 햇빛과 잦은 출입으로 차 안은 여전히 높은 온도를 유지했다. 최고온도가 36도를 웃도는 7일 오후 4시, 유일한 휴식 공간은 ‘차 안’이라 말했던 마트 배송 기사의 차량 내부 온도는 34도였다. 

9일 오후 2시 30분 기준 바깥 온도 30도(왼), 같은 시각 차량 내부 온도는 34.4도로 차량 내부 온도가 외부 온도보다 더 높다. (사진=물류신문) 
9일 오후 2시 30분 기준 바깥 온도 30도(왼), 같은 시각 차량 내부 온도는 34.4도로 차량 내부 온도가 외부 온도보다 더 높다. (사진=물류신문) 

한편 택배기사 C씨의 경우 9일 오후 2시. 차 안의 온도는 34.4도까지 치솟았다. 모든 업무가 끝난 오후 6시에도 차 안의 온도는 여전히 30도 이상을 유지했다.

택배기사 C씨는 “시원한 곳을 찾아가서 쉴 수도 있지만 휴식한 시간만큼 퇴근 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에 되도록 쉬지 않고 빨리 끝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생수 지원도 좋지만 ‘얼음물’ 최고…‘호불호 갈렸던 냉방용품’
계속되는 폭염 주의보에 정부와 기업들은 현장 근로자를 위해 생수, 쿨토시, 폭염 예방 키트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배송 기사들은 “폭염이라 해서 특별히 필요한 물품은 없다. 다만 생수나 얼음물은 필수품”이라고 말했다.

쿨토시, 모자 등과 같은 물품은 세탁, 위생, 효과 등에 호불호가 많이 나뉘어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생수는 수분 보충을 위한 필수품이기 때문에 꾸준한 지원을 요청했다.

택배기사 C씨가 택배물품이 실린 손수레를 끌고 있다. (사진=물류신문)
택배기사 C씨가 택배물품이 실린 손수레를 끌고 있다. (사진=물류신문)

마트 배송 기사 A씨는 “올해 회사에서 처음으로 생수를 지원해 준 것 같다. 하지만 찜통 같은 차 안에서 생수는 금방 미지근해져 매일 집에서 생수 여러 개를 얼려서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회사에서는 탈수증세를 방지하기 위해 근무시간 틈틈이 물을 많이 마시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충분히 마실 수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물은 딱 땀 흘린 만큼만 마셔야 한다. 화장실을 찾기 어렵고 찾더라도 잠겨있는 경우가 많아 마시는 물양을 조절하는 것도 노하우”라고 말했다.

택배기사 C씨도 “시원한 물을 얻기 위해 병원, 약국, 공공기관, 일부 식당 등 정수기에 물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외우고 있다. 이곳들에서 시원한 물을 보충하고 있다”며 “더 많은 생수, 더 나아가 얼음물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동노동자 쉼터, 알고 있지만 방문 ‘어려워’
택배, 배달, 대리운전, 수리 등 특정 장소가 아닌 ‘이동’을 통해 이뤄지는 직업의 종사자들이 크게 늘면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이동노동자 쉼터가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쉼터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다양한 이유로 쉼터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쉼터를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해 제대로 된 쉼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달 라이더들의 오토바이가 무인카페 앞 주차되어 있다. (사진=물류신문)
배달 라이더들의 오토바이가 무인카페 앞 주차되어 있다. (사진=물류신문)

배달 라이더 B씨는 “지난해 처음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쉼터에 갔다. 입장할 때 간략한 정보를 요구했다. 아마 방문자 수 확인 등과 같은 통계 작성을 위해 요구했겠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며 “그 이후로는 쉼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라이더는 “쉼터에는 모든 플랫폼 종사자가 모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대화하기 힘든 분위기다. 같은 배달 라이더라도 같은 회사가 아니면 조금 불편하다. 그래서 지역 사무실, 카페, 공원, 지식산업센터 등을 정해 함께 대화하고 쉬고 있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들의 경우 동선상의 이유로 쉼터 활용은 어렵다고 답했다. C씨는 “배송하는 동선에 쉼터가 있다면 잠깐이라도 갈 수 있지만 그런 배송구역을 가진 사람은 정말 극소수”라며 “쉼터에 가기 위해 배송구역을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배송구역에 있더라도 주차 등의 문제가 있는 곳도 있다. 향후 만들어지는 쉼터들은 높은 접근성과 간단한 화물차 정비 등 택배기사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갈 수 있는 요인들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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