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배송산업, 서비스업 아닌 ‘시설 투자업’… 터미널 부족 대안 마련해야

생활 물류시장의 핵심 시설인 도심 택배 분류터미널들에 외곽 쫓김 상황이 확산 및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제부터라도 물류산업을 서비스업이 아닌 설비 시설투자 산업으로 관점을 바꿔 관련 정책 및 행정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도심 내 물류거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선 천문학적 비용이 지속적으로 투자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택배사업자 관계자들은 “지금 자리에 앉아 울고 싶을 정도로 지금의 택배서비스 안팎 상황이 너무 어렵다”며 “고객 편의를 높이려고, 그 동안 애써왔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지자체를 비롯해 고객들까지 너무 이기적”이라고 하소연 한다. 택배 및 물류산업들의 물리적 시설들이 왜 외곽으로 쫓겨나는지, 또 대안은 없는 건지 현장을 점검해 봤다. 

 

택배노조, 분류인력 도입 앞서 도심 내 분류터미널 확보 먼저 요구해야 

최근 몇 년 부동산 토지가격 급등세로 도심 내 1 천 평 규모의 서브 택배터미널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비용은 더 이상 민간 물류기업 혼자선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단순 임대 센터만도 도심 내 1 천평 정도의 택배 분류시설 센터를 갖추려면 한 달 임대료만 억 원대에 달한다. 택배기업이 1개 배송에서 얻는 수익이 고작 몇 백 원에 불과한 상황에서 관련 비용을 택배기업과 현장 배송근로자들이 홀로 떠안기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반면 소비자들은 교통 혼잡과 소음 등을 이유로 끊임없이 센터 외곽 이전 민원을 제기한다. 문제는 도심 내 분류터미널을 구축할 토지가 없으면 시설 자동화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택배 배송자체가 불가능해 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택배노조의 분류인력을 추가 투입 요구도 불가능해 진다. 도심 인근에 물리적인 터미널 부지를 확보해야 분류인력도 추가 도입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결국 택배노조의 최우선 요구 항목인 분류인력 추가 도입에 앞서 도심 인근 물리적 터미널 구축 필요성을 먼저 인식하고, 이에 대한 논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정치권은 대형사고 발생 때만 잠시 관심을 가질 뿐, 사람이 죽고 다치는 안전사고는 반복되고 구조적·근본적 원인에 대한 진단과 해법 모색은 부재하다”고 지적한 시민단체 한 관계자의 말처럼 지금의 생활물류시장에서의 사건 사고에 근본 원인과 해법 이해가 절실하다. 최근 이태원 사고와 더불어 대한민국 곳곳에서 사건 사고로 끊임없이 사람과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는다. 특히 생활물류 업종인 택배산업 현장 사고는 대부분 비좁고 외곽에 자리한 택배터미널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도심 내 혹은 도심과 인접한 물리적 분류 터미널 확보가 최우선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는 표 얻기와 민심에 발맞춰 코앞의 이익을 바라볼 뿐, 근본적인 사고원인과 대책엔 관심도 없다. 지금의 택배 및 물류시설의 외곽 쫓김 행이 딱 그런 형국이다. 지금도 택배 및 물류센터 근로자들이 현장에서 다치고 과로에 따라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아무런 관심과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반면 물류기업 입장에선 물류시설 외곽 쫓김 현상으로 비용은 비용대로 큰 부담을 감내하고 있으며, 갈수록 악화되는 노동환경 개선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지난 여름 폐쇄된 영등포 양평동 도심 택배분류터미널 전경.
지난 여름 폐쇄된 영등포 양평동 도심 택배분류터미널 전경.

 

도심에서 멀어지고 쫓겨나는 택배 터미널, 사망사고 발생해도 ‘안 이상해’

그럼 실제 택배 및 물류시설들의 내쫓김 상황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여름 국내 최대 택배회사인 CJ대한통운은 수년째 서울 서부권역을 커버하던 양평동 서브터미널을 폐쇄, 외곽으로 이전했다. 또 같은 터미널을 사용하던 로젠택배 역시 영등포구청과 터미널 재계약을 연장하지 못해 도심 외곽으로 옮겼다. 이 덕분에 이곳을 이용하던 택배배송 근로자들이 한때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시위에 나섰던 택배기사들은 “도심 내 분류터미널 덕분에 인근 지역 배송에 부담이 없었는데, 외곽 터미널 이전으로 배송거리가 두 배로 늘어나 노동환경은 더 나빠지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영등포구청에 확인한 결과 이 터미널부지는 구청이 삼성물산에게 위탁해 운영하던 주차장 부지로 올해 겨울철부터 제설기지로 사용하게 될 예정이다.
 
한편 양사는 양평동 터미널 폐쇄로 택배 분류작업 인력구인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배송거리가 배로 증가했고, 일선 택배 배송기사들의 노동 강도는 더욱 높아지게 됐다. 한진택배도 김포공항 인근 분류 서브터미널을 폐쇄하고 더 도심 외곽으로 쫓겨 갔다. 롯데택배 역시 마찬가지다. 갈수록 비좁아지는 구로터미널을 대체 부지를 찾지 못해 택배 분류업무에 부하가 걸리고 있는 셈이다. 그 나마 우체국택배의 경우 공기업인 덕분에 도심 내 곳곳의 터미널 덕을 보면서 더 낳은 서브터미널 환경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택배회사 관계자는 “지자체 원망도 못 한다”며 “추정 컨데 고객이면서 주민인 이들의 민원과 교통 혼잡문제 때문에 택배 터미널들의 외곽 쫓김 현상을 가속화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영등포구청에 문의했지만 담당자는 “해당 부지는 민간 기업에 위탁 운영계약이 끝나 구청에서 겨울철 제설기지로 사용하기로 했다”며 “터미널 재계약 불발은 자신들의 결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 도심 터미널의 재계약이 안 된 이유는 정당해 보인다. 하지만 택배업계 관계자들은 “주민들의 민원 혹은 택배차량들로 인한 교통 혼잡을 들어 암묵적으로 재계약을 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한국물류시스템연구원 조윤성 대표는 “물류시설의 혐오행태와 배척에 따라 소비자들은 이미 보이지는 않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전체 소비자들의 물류비용 증가와 노동환경 악화, 그리고 향후 택배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터미널 폐쇄 후 썰렁한 택배분류시설들만 남겨져 있다.
터미널 폐쇄 후 썰렁한 택배분류시설들만 남겨져 있다.

 

매일 수 백 만개의 택배상품과 각종 신선유통 제품을 저렴하고, 편리하게 주문하고 받을 수 있는 기반은 최적화된 물류시설 분류거점에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정치권과 정부관계자들의 물류시설 혐오인식과 소비자들의 이기적인 님비현상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택배 및 새벽배송시장 전반에 퇴화와 경쟁력 약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선 배송근로자들의 안전에도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외치면서 한편에선 사람을 도구로 인식하는 산업전반의 의식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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