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말로만 유휴부지 제공 ... 업계, 유휴부지 사용 못해 ‘거짓말’ 

대한민국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생활물류 대표 업종 택배 핵심시설인 ‘도심 분류터미널’들이 기약 없이 도심 외곽으로 쫓겨 밀려나고 있다. 이에 따라 생활물류시장 뿐 아니라 전반적인 물류서비스 파행이 불가피해질 우려를 키우고 있다. 여기다 통상의 물류 거점시설들 역시 도심 인근엔 설자리를 잃고 있어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크고 작은 도심 물류터미널들이 시민들의 민원과 혐오시설로 치부되면서 지자체들과 정부정책에서까지 관심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각종 물류시설들의 경우 허가는 고사하고 건축허가를 받은 곳까지도 반려되는 등 갈수록 미운털을 떨어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가속화될 경우 기업 물류비용 상승 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의 생활물류 편의성까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범 물류업계 차원을 넘어 정부정책에서 이에 대한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택배 및 물류업계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며 “물류거점들이 외곽으로 밀려 이전될 경우 물류비 인상뿐 아니라 인력 수급 등이 어려워 지금의 배송 편의성은 빠르게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거시적 정책수립에 나서야 할 정치권은 코앞의 민원만을 위해 물류산업을 재물로 삼고 있다. 특히 고객 및 산업계 역시 물류대란 파업 때만 관심을 가질 뿐 자신들의 편의만을 우선해 물류시설들을 밀어내고 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택배 및 물류시설거점들의 외곽 행 상황과 이에 따른 후폭풍 국면을 점검해 봤다. 

국내 최대 택배기업 CJ대한통운이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 곤지암 택배 허브터미널 전경.
국내 최대 택배기업 CJ대한통운이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 곤지암 택배 허브터미널 전경.

물류시설, 혐오하면 할수록 비용증가ㆍ 산업 경쟁력 약화  
  
대한민국 산업경제에 허파 역할을 맡고 있는 택배 및 각종 물류센터들이 ‘기피 및 혐오시설’ 취급, 수도권 곳곳에서 건립에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이들 시설들이 점점 도심 외곽으로 쫓겨나고 있지만 좀처럼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들어 더욱 가속화되는 택배상품 분류 서브터미널들의 외곽이전 속도다. 그나마 도심 인근에 자리했던 중소형 택배분류 터미널들까지 하나 둘씩 도심 외곽으로 밀려나가고, 이에 따른 택배현장 근로환경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이 같은 추세로 택배서비스는 그 만큼 배송거리가 멀어지고, 운영비용을 상승시켜 구인난에 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택배업계 과로사 역시 택배시설 외곽행이 지금처럼 가속화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택배업계 구성원들은 ‘여기서 더 밀리면 사업 영속성에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키우고 있다. 

# 강서구 00동 K아파트를 담당하는 김우식 택배기사(가명, 60세)의 배송시간은 매번 저녁 8시를 넘긴다. 몸이 불편한 조카와 와이프까지 택배배송을 도와주고 있지만, 물량이 많은 요일의 경우 늦은 밤 시간까지 배송을 반복하고 있다. 이유는 첫 배송시간이 통상 오후 1시를 넘겨야 가능하기 때문.

예년엔 도심 인근에 터미널이 자리해 분류작업이 늦어도 오전 11시 전에 끝내고 첫 배송에 나설 수 있었는데, 서브 분류터미널이 김포 외곽으로 이전되면서 첫 배송시간도 늦어져 그 만큼 거리와 근로시간이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택배 본사에 협조를 구했지만, 답은 ‘구하고 있다’라는 답변 뿐 감감 무소식이다. 김 씨는 “수익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택배서비스의 영속성에 근본적인 한계를 맞고 있어 특단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현상에 추세반전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유휴 부지를 찾아 도심 내 분류 터미널을 제공 하겠다”고 수년 째 밝히고 있지만, 택배기업들은 “정부의 이 같은 발표는 ‘거짓말’이라며 수년 째 도심 내 쓸 만한 부지를 전혀 제공받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건축허가 된 물류시설의 백지화까지 추진되면서 관련 업계들의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곳도 하나둘이 아니다. 당장 인천시의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인천도시공사 등이 검단신도시에 오는 2026년까지 지상 8층, 연면적 30만㎡ 규모의 초대형 물류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인접 아파트 입주예정자 3,680여 가구의 주민들이 화물차로 인한 교통체증은 물론 매연·교통사고가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경기 양주시 역시 이미 허가를 내준 옥정지구 내 물류센터를 직권취소하는 절차를 밟고 허가 취소 방안을 찾고 있다. 

이밖에도 의정부 고산지구 역시 지하 2층~지상 5층, 연면적 5만 2000~10만 4000㎡ 규모의 물류창고 역시 건축허가를 받았으나 9개월 넘도록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여기다 남양주 별내지구에선 물류센터 허가 담당 공무원이 3억원 대의 손해배상 소송에 피소되기까지 했다. 이처럼 지자체들의 허가완료 혹은 허가 과정에서 민원들을 이유로 정상적인 물류거점 신축상황을 속속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미 토지 매입과 건축허가까지 받은 상태에서 허가를 번복하면서 사업자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물류산업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한진택배의 구로 도심 터미널 전경
한진택배의 구로 도심 터미널 전경

물류배송 출발점, 물리적 시설 없인 현 난제들 해결 못해

물류산업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는 물류부동산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배송물류의 경우 보통은 서비스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산업의 한 꺼풀만 벗겨보면 물류산업은 부동산투자 업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물리적 공간 없이는 그 어떤 물류서비스도 불가능하기 때문. 

반면 통상 생활물류 서비스 최종 수혜자인 고객들은 라스트 마일 배송서비스를 단순 서비스업으로 인식한다. 이 같은 인식은 물류 배송과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고객들의 선택적 선입관이다. 택배를 비롯해 현재 생활물류시장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새벽배송과 당일배송 서비스는  후방에 물류부동산 시설을 기반으로 한 기간산업 없인 불가능한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가 누리는 각종 배송 물류서비스는 님비 현상처럼 혐오시설로 밀어내고 있는 물류센터 및 분류터미널 없인 애초부터 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금의 물류센터시설들을 혐오시설로 인식, 외곽지역으로 밀어만 낼 경우 개개인들이 지불해야 하는 물류비 인상 뿐 아니라 현재 누리는 생활물류 편리성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이뿐 아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물류시설 법정 다툼의 경우 막대한 소송비용과 손해 배상금은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물류비용에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편 택배노조가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택배 배송기사들의 과로 상황 역시 ‘도심 인근에 충분한 물류거점만 확보되면 90% 정도의 문제들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게 물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국토부와 서울시 등은 유휴 부지를 개발해, 제공하겠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물류현장에선 “지난 십 수 년간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도심 내 유휴 부지를 한곳도 제공받지 못했다”며 “새 정부 출범 때 마다 업계의 도심 유휴부지 확보 요구에 대해 장밋빛 비전을 제시하지만 그때그때 위기만 모면하는 거짓 정책만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시영 아주대 물류대학원 겸임교수는 “이제라도 ‘택배업 = 부동산 투자업’이란 공식을 인식해야 할 시점”이라며 “도심 인근 최적지에 물류센터 및 거점(부동산)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택배상품의 분류 인력의 원활한 수급뿐 아니라 배송기사 구인, 그리고 짧은 배송거리로 환경오염을 줄이고, 비용을 줄이면서 서비스 질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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