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노사정이 말하는 운수산업의 안전과 노동기준

화물연대의 마지막 기고는 운수산업의 안전에 따른 것이다. 여전히 전세계에서 안전운임제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와 무역협회 등 화주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2022년 안전운임을 결정하는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위원회를 보이콧했다. 화물노동자를 대표하는 화물연대는 즉각 비판 기자회견을 여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안전운임제 폐지? 안전을 위한 제도

화주나 운수사업자는 법으로 운임을 강제하는 안전운임제의 폐지를 바라고 화물노동자나 노동조합은 유지, 확대를 원하는 대립이 당연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해외 상황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노사의 입장이 같지 않고 안전운임제를 반대하는 기업도 있지만 이 제도에 찬성하고 심지어 노동조합과 안전운임제를 보장하는 협약을 맺은 운수사업자와 화주도 있다.

호주는 2012년 제정된 전국 단위의 안전운임제가 2016년에 폐지됐다. 그런데도 대규모 유통산업 화주 기업들이 안전운임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노동조합과 맺고 있다. 전국 800개 이상의 점포와 슈퍼마켓, 16개의 물류센터를 갖춘 호주의 대표적 유통기업인 콜스(Coles)는 호주운수노조와 안전운임 관련 헌장(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콜스는 특수고용 화물노동자의 ‘비용 회수’를 보장하는 운임과 함께 안전 같은 노동기준을 정하고 자사와 계약한 운송회사가 이를 지키도록 노력하고 노동조합과 함께 지속적으로 점검·협의하고 있다. 콜스측은 “보건, 안전, 복지는 콜스 문화의 핵심이다. 이 헌장으로 호주운수노조와 만들 프로세스는 공급사슬 전반에서 안전에 대한 동일한 초점을 유지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설명한다.

도로 안전과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조와 기업이 건설적으로 토론하고 해결책을 마련해가는 이러한 흐름을 최근 열린 안전운임 국제심포지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제심포지엄 둘째 날에는 ‘도로운수산업 안전과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노사정의 역할’이라는 온라인 국제 노사정 회의가 진행됐다. 이 회의 중 호주의 노사정이 함께 진행한 토론회에는 화주기업 콜스와 운송기업 린폭스(Linfox), 운수산업협회, 상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최근 도로운수 특별 조사위원회의 의장을 맡은 글렌 스테럴 상원의원은 도로운송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핵심 문제 중 하나로 ‘임금 도둑질’을 꼽았다. 그는 임금 도둑질의 의미를 ‘화물노동자, 특히 특수고용 화물노동자들의 무급 노동시간’으로 설명했는데, 상하차 및 대기 시간에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공급사슬 정점에서 시작된 비용 절감 압력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또 “옳은 일을 하지 않는(안전·노동기준을 지키지 않는) 사용자들이 만든 경쟁 때문에 좋은 사용자들 역시 압박을 받고 있다”라며, “좋은 기준이 있더라도 국가 차원의 강제 시스템이 없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호주 안전운임 심사위 폐지, 운송산업 규제 능력 공백으로 만들어

다른 패널 역시 전국 차원의 법제도 부재를 문제로 지적했다. 호주도로운송산업협회의 국가산업고문인 폴 라이언은 전국 안전운임 심사위원회의 폐지를 주요 원인으로 진단했다. 그는 “안전운임 심사위원회의 폐지는 호주가 운송산업을 규제할 능력에 공백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1981년부터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안전운임제가 존재해왔다’는 점을 상기하며, “우리에게 안전운임은 공급사슬 내에서 운수사업자가 사용할 기준이 마련되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가 속한 호주도로운송산업협회는 최근 안전운임 심사위원회와 유사한 ‘운송표준위원회’ 설립을 의회에 제안했다. 그는 이 위원회가 “운송회사가 운전자를 고용하건, 하청업체를 이용하건 공정하고 합리적인 운임 설정을 보장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회가 설립된다면 화주가 운임을 떨어뜨리기 위해 ‘좋은’ 운송회사와 계약을 파기할 경우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야당인 호주노동당도 현재 당론으로 전국안전운임의 재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당 당론은 다음과 같이 안전운임제의 도입 취지를 명시하고 있다. “연방 노동당 정부는 시급한 과제로 공정한 보수와 노동조건을 포함한 안전한 노동 표준을 책임지는 독립기구로 구성된 전국 안전운임제를 입법화할 것이다. 이 과제는 운송산업 전반에 걸친 악순환을 가속화하는 신기술과 긱 경제의 출현으로 인해 더욱 시급해졌다.”

호주의 대표적인 운송회사인 린폭스도 전국 안전운임제도의 폐지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안전운임을 만들기 위해 호주운수노조와 협력하고 있다. 호주 린폭스의 인사담당 최고책임자 로리 드 에이피스는 “업계 전반이 정규직 일자리를 보장하고, 모든 노동시간에 대해 공정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닥을 향한 경쟁은 결국엔 역효과를 낳는다. 우리는 기준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낮은 임금이 아니라 서비스로 경쟁하고 싶다”고 말했다.

린폭스는 이를 위해 호주운수노조와 협약을 체결했고, 노조가 참여하는 감사를 통해 린폭스는 물론 하청업체에서도 이러한 기준을 준수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린폭스 역시 새로운 안전운임 기구를 지지하고 있다. 에이피스는 “안전운임은 사업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이다. 안전운임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주당 5~60시간씩 일할 사람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나? 사람들이 일주일에 60시간을 일할 필요가 없고 노동자들이 워라벨을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패널들은 한국 안전운임제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스테럴 상원의원은 “불과 2년 밖에 되지 않았다. 충분한 기간도 아니고 어떤 결정을 내릴 충분한 정보도 없다. 만일 한국의 안전운임제가 폐지된다면, 그것은 한국 정부의 심각한 판단력 결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언 고문은 서면 답변서를 통해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제도에 대해 답하는 것은 적절치 못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공급사슬에서 평판이 좋고, 합리적인 행위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에 대한 나의 지지는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산업의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나 적절한 기준을 지키지 않는 것을 통해 기준을 지키는 행위자보다 우위에 서는 것이 일반화되는 산업은 발전할 수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해외 노사정의 노력에 주목해야할 이유다.

내용 정리: 손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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