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로 정복하는 골프 (21)

티오프(Tee Off : 티샷을 마치고 티그라운드를 떠나는 것)와 더불어 골프는 각개 전투가 된다. 티샷의 비거리며 방향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노련한 캐디가 있어 티그라운드에서 오늘의 손님(?)들 성향을 70% 파악했다면, 티오프 후 페어웨이에서의 각개전투에서 20%를 더 알게 된다. (나머지는 그린의 몫이다.) 흥미롭게도 티그라운드에서의 예감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시작과 더불어 좋은 스코어를 획득하기 위해 게임에 열을 올리는 각자의 심리전이 오고 가지만, 사실 결과는 ‘누구 때문에’로 인해 더 좌지우지 되는지도 모른다. 돈의 문제이기 이전에 게임이 끝난 후 진실로 ‘오늘 좋은 게임을 했어’ 라는 말이 나오도록 하려면 모두 노력해야 한다.

매너나 진행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캐디보다 더 진행에 열을 올리는 손님도 있다. 4명 중 한명이라도 이런 손님이 있다면 그날의 캐디는 운이 좋은 날이다. 아무리 유능해도 캐디의 말보단 동료의 말이 잘 먹히는 것이 사실이니까. 세 명이 진상이어도 제대로 된 한 명이 있다면 캐디들은 4시간 동안 숨 쉴 구멍은 찾은 셈이다.

좋은 매너는 만인이 흠모하는 이상이다. 몸에 밴 매너에 품위가 있고 지식과 유머까지 곁들였다면 금상첨화로 상대방을 압도한다. 골프는 곧 매너 게임이란 말이 있듯 인식이 남다른 운동이기에, 매너 좋은 손님 한 명에게 지지 않으려고 나머지 세 명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알차고 재미있는 골프를 위해서는 캐디를 구심점(?)으로 개인을 드러내지 말고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답을 줄 수 있는 것이 캐디라는 기본적 설정을 인정해야 한다. (골프에서의 문제는 캐디가 답을 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생겨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걸 넘어서면 컴패니언 문제요, 나아가 개인의 컨디션에 하자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돈을 내고 치는 사람은 고객이지만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캐디임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공이 어려운 곳에 놓였을 때 캐디의 조언을 무시하는 행위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개인으로서는 룰을 잘 지켜야 한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골프 규칙」 전체를 생각하지 말고 세 가지에만 충실하면 괜찮은 골프를 할 수 있다. ▲첫째는 공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티샷을 했다면 그린에 올리기 전에는 (어디에 어떻게 있든) 놓여진 그대로 쳐야 한다. 티샷이 OB가 나거나 로스트 된 상태에서 ‘멀리건, 빌리건’ 하는 것만 그날의 골프를 김빠지게 하는 게 아니다. 디봇에 들어가 있거나, 나무 밑이거나, 경사 심한 기슭이거나, 잔디 없는 맨땅이거나, 러프 속에 있을 때 알게 모르게 공을 툭툭 건드리는 것도 골프를 재미없게 만든다. 손으로 집어서 옮기거나 아이언 클럽을 사용하는 것은 (양해를 얻었건 안 얻었건) 동반자가 알게 하는 행동이지만. 음흉한 사람은 다른 데 쳐다보거나 큰소리로 잡담하는 등 딴청 부리며 구두로 툭 차 버린다. 아무도 못 볼까… 그건 희망사항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캐디가 안다. 더 없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그런 부끄러운 짓을 해야만 할까? 차라리 한 타를 먹는 것이 낫지… 옮기고 싶다, 조금 옮기는 게 뭐 어떻겠나, 하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옮겨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마음으로 임하면 결과적으로 그것이 골프의 참 재미가 되고, 기량 향상으로 이어진다. 접대 골프를 한다고 나서서 옮겨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접대가 아니라 모욕임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는 순서를 지키는 일이다. 티오프 이후는 그린에서 (더 정확히는 홀 컵에서) 멀리 있는 공부터 차례대로 치며 전진해 가는 것이 불문율이다. 차례차례 번갈아가며 이루어지는 샷을 동반자들이 서로서로 지켜 봐 주는데서 골프의 특별한 우정이 돈독해진다. ▲세 번째는 플레이를 시원시원하게 능률적으로 하는 것이다. 걷는 것부터 달팽이처럼 꾸물꾸물 대지 말고 활발하게 척척 움직여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보여주는 골프’를 하려는 욕심이다. 자신의 멋진 샷을 동반자에게 보여주고만 싶은 것인데, 아무리 잘 쳐도 봐주는 동반자가 없으면 맥이 빠진다. 맥 빠진 그 다음 샷이 온전할 리 없다. 좌나 우로 가고, 아니면 뒤땅을 치거나 쪼르 나고… 헤매다보면 그제야 동반자들이 안쓰러운 시선으로 지켜봐 준다. 그러면 ‘오냐. 한 번 보여주지’ 하는 치기(稚氣)에서 일반적으로 어렵다는 3번 아이언 같은 걸 쥐고 휘두른다. 결과가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명한 조크가 있다. 한 부인이 법관에게 달려와 남편을 고발했다. “남편이 골프채로 나를 때리려했어요. 특수폭행미수 아닌가요?” “골프채로 그랬다면 살인미숩니다. 큰일 날 뻔 했군요, 그런데 몇 번 채로 그랬지요?” “3번 아이언이었어요.” “에이. 그럼 무죄입니다. 3번은 잘 안 맞는 클럽이에요.”
‘보여주는 골프’를 하는 사람은 이렇게 일반적으로 힘든 클럽을 선택하거나 트러블 샷에서 (캐디의 조언을 무시하고) 만용을 보인다. 열 번 시도해서 한두 번 성공도 힘든 것을…

모든 운동이 다 그렇지만 골프에서도 자신감이 중요하다. 가뜩이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골프인데 무리를 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나는 왜 늘 이 모양일까, 정말 안 되네. 하는 탄식의 울림이 속에서 들리면 자신감이 약해지고 불안을 느낀다. 불안은 곧 잠재의식에 신호를 보낸다. 

잠재의식이 인간 활동의 90%를 통제한다는 보고가 있다. 모든 사유와 말이 잠재의식에 반응한다. 말은 잠재적 에너지를 실질적으로 표면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스스로에게, 아니면 동반자에게 말하기를 ‘아무리 연습을 안 했기로 너무 안 맞는데?’ 하고 자신을 감추려 하면 잠재의식은 당장 신체 내 에너지 장에 이 같은 위선을 고발한다. 잠재의식의 세계에 위선이 통할 리 없다. 곧바로 응징이 나타난다. 그래서 충분히 파를 할만한 홀에서도 보기를 범하는 잠재력을 갖게 된다.

심리 상태는 예언이 될 수 있다. 자신 없어하고 불안해하는 가운데 체면이나 보호하자고 내뱉는 변명 따위를 반복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되어 골프 기량은 물론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큰 방해물이 된다. 그보다는 유머를 활용하며 자신감을 다지는 것이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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