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996년 5월 본격적인 해양경쟁시대의 도래에 대비하여 제2의 국토인 바다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진취적인 해양개척정신을 함양토록 하기 위해 매년 5월 31일을 ‘바다의 날’로 제정했다. 해양수산부는 매년 바다의 날이면 해양수산발전 유공자의 노고를 치하?격려하고 해양수산분야의 종사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부여하는 한편, 모범사례를 발굴 널리 홍보하여 자라나는 청소년과 일반국민에게 해양개척의 의지를 다지는 계기로 활용하기 위해 민간인, 단체 등을 대상으로 정부포상을 시행해 오고 있다.올해로 9회를 맞은 바다의 날을 기념하여 최원표 대표이사 등 10명에게 훈장 등을 수여했다.

[금탑산업훈장] 최원표 (주)한진해운 대표이사
한국 해운산업 위상 제고

한진해운의 전문경영인인 최원표 사장은 탁월한 경영능력과 혼신의 열정으로 연간 40억불 이상의 외화획득을 통해여 국가경제발전과 동북아 물류중심국가 건설에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컨테이너선박의 대형화 및 신형 경제선을 적기에 건조.투입, 세계 5위의 컨테이너 전문선사로 발전시켰으며 한국이 세계 8위의 해운국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 이번에 제9회 바다의 날을 맞아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최원표 한진해운 사장은 1967년 한진그룹(한진상사)에 입사한 후, ㈜한진, 한진해운, 대한항공, 한국공항 등 육.해.공을 망라하여 물류현장을 경험한 종합 물류 전문가이자 국제감각을 갖춘 글로벌 경영인으로 평가 된다.
월 2회 이상의 해외출장을 통해 점소장의 현지 마케팅 강화를 독려하고, 해외 주요 고객을 직접 방문하며 국제 해운시장 흐름을 파악해 왔다. 또한,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직 전체가 지식을 공유할 때 경쟁력이 배가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지식경영 체제구축에 앞장섰다.
최 사장은 대내외적으로 포용력과 리더쉽을 겸비해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사고가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해양소년단연맹 부총재, 선주협 수석부회장, 한국 정보경영연구회 운영위원, 전경련 물류혁신추진 특별 위원 등의 활동은 물론 특히 당사가 해운업계 최초로 추진하고 있는 지식경영 최고경영자(CKO:Chief Knowledge Officer)로서 전사적인 지식 경영을 주도하고 있는 등 활동영역이 넓다.
지난 1987년 한진그룹의 대한상선 인수 시 대한항공 미주지역 부본부장으로서 대한상선 미주지역 인수작업에 참여함으로써 해운업계에 입문했으며 업무 추진력과 리더쉽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과거 현장 영업 시에는 회식 때 종종 직원들과 소주를 나눠 마시며 회사 발전을 위한 난상 토론을 종종 벌인 유명한 일화가 있으며 철저한 자기관리로 젊은 사람 못지않게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추진력과 리더쉽 외 국제감각까지 갖춰 국내외 주요 행사에 참석 현장 경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운대국 성장에 기여

장기적인 안목으로 1996년 3월 당시로는 세계최대형인 5,300TEU급 컨테이너선을 취항시킨 이후 지난해에는 5,700TEU급 선박을 확보하여 컨테이너 선대의 대형화를 이루는 한편 대형 전용선을 이용하여 국가 기간산업용 원자재를 수송함으로써 국가 경제발전에 큰 보탬이 되었다.
지난 1997년 2월 독일 선사인 SENATOR Line을 인수하여 (주)한진해운의 취약한 구주지역 판매망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세계 5위의 컨테이너 전문선사로 발돋움함으로써 우리나라의 해운위상을 제고시키기도 했다.
이와 함께 더욱 다양한 스케줄을 확보하고 중복 기항지 조정으로 쾌속 서비스를 구축하는 한편 타사의 유휴선복 활용으로 운항원가를 절감했다. 경쟁력을 배가 시키기 위해 선사간 항로를 공유하는 방안을 강구하여 이를 CKYH그룹(COSCO, K-Line, Yangming, 한진해운) 구성으로 실현시키고, 동 그룹의 리더로 참여하고 있다.

외화획득과 국제수지 개선

사장으로 취임한 지난해에 매출액 5조 5000억원, 순이익 2천 900억원을 돌파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 주었고, 운임수입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임으로써 외화획득과 국제수지 개선에 기여했다. 또한, 한진해운은 지난 1998년에는 30억불 이상의 운임수입을 달러로 벌어들이면서 IMF 시대에 국민들에게 수출한국의 비전을 제시했다.
지난 1997년 6월 보유 선박중 31척의 선박을 적기에 매각함으로써 1997년 하반기, 1998년 상반기 약 5억불의 외화를 획득하여 국가의 외화 수지에 상당한 기여한바 있으며 또한, 매각을 통해 약 2억2천만불의 매각이익을 실현, 해운 불황기에 회사의 경영정상화에 크게 기여했다.
범세계적인 영업망 구축과 함께 전체 직원의 40%인 1400여명을 해외 현지인으로 고용하고 한국 직원의 15%인 140여명을 해외주재원으로 파견하는 등 세계화된 기업으로 육성하였으며, 세계 3대 기간항로를 포함하여 전 세계를 연결하는 25개의 정기컨테이너항로를 개설하는 한편, 해외 60개국에 120여개의 판매조직망을 구축, 운임수입의 약 90%를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세계해운 e-비지니스 선도

한진해운은 전 세계적인 온라인 전산시스템 운영으로 지구촌 어느 곳이든 서비스가 가능한 최고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지상과 지상, 지상과 선박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신정보시스템(New Information System / NIS)을 도입하여 리얼타임으로 생생한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2001년 3월 세계 유수의 13개 선사와 제휴하여 해운종합서비스 인터넷 사이트인 'GT NEXUS' 구축에 주도적으로 참여 세계 해운 e-이비지니스를 선도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 김성식 범양상선(주) 선장(추서)
한 길 해운인, 해양문학 개척자

1967년 9월 라스코해운 3항사로 승선후 2000년 11월까지 33여년간을 한국 해운업계에 투신한 이후 투철한 직업관과 사명감으로 오직 한길을 걸어온 한국 해기사의 귀감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고단하고 망망대해의 삭막한 승선생활 속에서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청진항>, <바다는 언제 잠드는가>, <이세상 가장 높은 곳에 바다가 있네> 등 주옥같은 명편으로 엮은 해양시 200여편을 창작하는 등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문 업적으로 한국근대문학사에 해양시를 정착시키고 우리나라 해양문화의 창달과 보급, 해양사상 고취에 기여했다.
또한, 그를 추모하는 문학인들은 한국해양대학내 해양박물관에 시인선장 김성식 코너(습작품 등 진열), 시화전 등을 마련함은 물론 지역신문(국제.부산일보)에서도 해양시성(詩聖)으로 극찬하는 등 한국근대사 문학의 진정한 근대성을 확보한 해양시인으로써 일평생 바다에서 삶을 찾고 바다에서 반짝이는 시적인 영감으로 끈질긴 바다사랑과 해양문학 개척의 선구자로 평가하고 있다.
33여년간 장기간 승선생활을 하면서 오직 선박의 선장으로 투철한 직업관으로 불철주야 선무에 임함으로써 4D업종으로 선원직 기피현상이 만연하는 근로의식의 격변기에서도 흔들림 없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후배 선원들의 근로의식 제고, 생산성 향상은 물론 오랜 연륜과 경험에 의한 탁월한 지도력으로 선원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또한, 한국 해운, 한국 선원.선박계의 발전과 영속을 위하여 훌륭한 후진양성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후진양성을 위해 승선근무 중 부하선원의 자기개발 유도 및 항해기술교육을 꾸준히 시행하여 우수한 해기사 및 해운인력 양성에 이바지했다.

[홍조근조훈장] 이재균 부산지방해양수산청장
항만 위기 슬기롭게 극복

부산항 개항이래 최악의 위기상황이었던 화물연대 파업시 관계기관 합동 부산항 비상수송 대책본부를 구성, 운영하여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Y/T차량의 부두밖 운행, 군차량 동원(20대 확보), 철도수송 확대 등 컨테이너 비상수송을 강구하는 한편 운송거부 참여자에게 홍보문 발송, 전화 통화 등의 방법으로 운송거부 차량이 조속히 복귀하도록 호소, 조기 사태수습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태풍 '매미' 내습으로 컨테이너크레인이 전도 또는 궤도 이탈하는 피해 발생시 부산청 자체 비상운영대책반을 구성, 운영하여 부산항 피해부두 이용선박을 타부두로 전배하고 타터미널과의 협조를 유도하여 태풍으로 인한 부산항 기항선박의 이탈을 방지하였으며, 부산항운노동조합의 협조를 받아 부산항이 정상화될 때까지 24시간 하역작업이 이루어지도록 비상하역체제를 구축했다. 그는 또 피해 크레인의 조기 복구방안을 강구하여 약 6개월만에 복구 완료함으로써 동북아중심항을 지향하는 부산항의 강한 의지를 대외에 과시했다.
그는 유관기관, 업체 합동으로 싱가폴, 홍콩, 중국현지 홍보를 강화하는 한편 2003년 12월에는 선사 아시아본부, 선사 지사, 주요화주 관계자 140명을 초청하여 부산항 홍보활동(Port Sales)을 전개함으로써 환적화물 유치활성화에 기여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부산청, 부산광역시, 부산항운노동조합, 부산항만하역협회 대표자 30명이 참가한 가운데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노.사.정 연찬회를 개최, 부산항 발전을 위한 방안을 허심탄회하게 협의하여 항만근로자의 24시간 근무체제 도입, 화물연대 운송거부와 같은 항만기능 저해사태 재발방지 공동노력 등 부산항 발전을 위한 공동결의문을 채택하여 노.사.정의 단합된 모습을 대외에 과시하고 부산항 신뢰도 향상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한편 부산항 포탈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부산항 물류정보 서비스체계를 구현하고 항만물류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항만서비스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2회 해운물류 e-비지니스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동탑산업훈장] 박영우 (주)세광종합기술단 회장
항만개발비 절감 기여

부산항, 인천항 등 많은 국가 주요 항만개발사업의 계획수립, 설계 및 사업시행에 참여하여 풍부한 경험.기술, 창의.연구로 국가예산 절감 및 해운항만기술발전, 국책사업의 계획목표 달성에 헌신함으로써 수출입 등 항만화물의 원활한 처리와 물류개선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 및 경제발전에 기여했다.
1967년부터 2003년까지 36년 여간 공직에 근무하면서 인천항 선거(제2도크) 건설사업, 인천항 1 및 2단계 개발사업, 부산항 1, 2 및 3단계 개발사업, 부산신항만 건설 민자사업 등 많은 국가 중요 SOC사업에 참여하여 계획수립에서부터 설계 및 공사시공에 이르기까지 사업시행 과정에서 새로운 공법 및 기술을 검토, 도입하여 국가예산을 크게 절감케 하였고 많은 어려움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책사업들을 적극 추진하여 계획목표 달성에 헌신했다.
건설부 항만시설국 및 인천항건설사무소에 근무하면서 인천항 선거(제2도크)건설사업의 계획, 설계 및 공사시행으로 국가예산의 절감과 계획목표 달성에 공헌하였으며, 인천항개발 ADB 1단계 차관사업 및 북평항건설 OECF 차관사업에 참여하여 계획수립, 설계, 차관도입 및 협정체결추진 등에 기여했다.
1978부터 1982까지 해운항만청 부산항건설사무소 계획계장으로 근무하면서 부산항개발 1 및 2단계 IBRD차관사업에 대한 계획수립, 설계 및 공사시행과정에서 해저의 극히 연약한 이토층의 깊이가 최대 약 30여 미터나 기초지반 위에 축조되는 동삼동 호안의 기초처리공법을 우리나라 최초로 쉬트 맷트공법으로 검토, 시행하여 성공적으로 완공하므로써 공사비 절감(약 100억원)과 공사기간 단축과 신공법 도입을 통한 기술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컨테이너부두(6부두)의 모래매립 치환심도, 펌프준설선에 의한 매립모래 다짐공법, 피복석 고루기 방법 및 발생 석재유용 등을 검토 시행함으로써 국가예산 절감(약 150억원)과 컨테이너 전용부두의 목표 계획기간 내에 완공, 운영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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