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 / EBS BOOKS

전쟁은 인류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다. 전쟁은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 시키고, 엄청난 재산 피해를 발생시키고 이로 인해 국민들은 상당 기간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만든다. 전쟁은 전쟁당사국 뿐 아니라 주변국가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현대와 같이 세계화가 심화되고 국가간의 이해관계가 더욱 심하게 얽혀진 배경 속에서는 국가간의 전쟁이 아닌 여러 국가들이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함으로 그 피해는 지역적 사안이 아닌 전 세계적인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일부 전쟁을 유도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명분으로 전쟁의 원인을 제공하고 전쟁을 발발시키는 세력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을 두려워하고 전쟁이 일어나질 않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볼 때 전쟁은 당시에는 엄청난 피해를 불러일으켰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인류의 발전과 번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전쟁은 뛰어난 영웅들을 등장시킴으로 후세에 많은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세계사적으로나 우리나라 역사적으로 볼 때 큰 변혁기에는 대부분 전쟁이 그 가운데 존재했다. 그것이 많은 학자들이 전쟁사를 연구하고 있는 이유이다. 전쟁의 승패는 복합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지형, 기후, 군사들이 어떤 훈련을 받고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지, 이러한 요소들을 믹싱하는 장수가 누구인지 등이다. 명장이 승리를 만든다. 압도적인 전력이나 전쟁에 참패한 군대가 있는 반면 절대적 열세인 부대로 큰 적을 물리친 이순신과 같은 장수가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여건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여 역사를 바꾼 명장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을 접해볼 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
마라톤 전쟁에서 대패한 페르시아는 기원전 480년에 10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해 왔다. 페르시아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바다와 육지를 통해 파죽지세로 그리스를 점령해 갔다. 그리스 육군은 궤멸 상태에 이르렀고 남은 군대는 해군 전력뿐이었다. 그리스에는 단지 아테네와 스파르타만이 페르시아에 맞선 상태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마라톤 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있었던 아테네에 대해 “페르시아는 반드시 더 큰 대규모의 군대로 다시 침공해 올 것이다. 왜냐하면 페르시아가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원인이 아직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고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아테네는 라우니움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굴되었고, 아테네 정치가들은 발굴된 은을 시민에게 분배하려했다. 이때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부를 국가의 힘을 기르는데 활용해야 해야한다는 주장과 함께 당시 해양국가로서 번성하고 있으며 많은 함선을 보유하고 있는 아이기나 점령을 제시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논리적인 설득을 통해 아테네는 아이기나를 손에 넣으며 강력한 해양국가로서 경제와 해군력을 키웠다. 스파르타는 끝까지 육지에서 최후의 결전을 주장했으나, 테미스토클레스는 사전에 정보를 페르시아에 흘려 페르시아군이 스파르타와 아테네군의 육지이동로를 완전히 차단하도록 유도했으며, 결국 해양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일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그 전쟁이 해전의 전설로 불리우는 살라미스 해전이다. 이때도 페르시아군은 숫자적으로 2.5배의 압도적인 전력을 보였지만 실전과 해상 전투력을 위한 인프라를 충분히 확보해 놓은 아테네 해군을 이겨낼 수 없었다. 결국 살라미스 해전은 페르시아의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현재의 상황을 완전히 종료시키기 위해서는 원인의 존재 유무를 확인했으며,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이것이 통찰이다. 전략이란 탁상에서 쏟아지는 잡다한 술수가 아니라 변화를 올바르게 인지하고 대응책을 수립하는 통찰이다. 그리스를 지켜낸 것은 테미스토클레스의 통찰이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을 이룬 청년 ‘알렉산드로스’
테미스토클레스는 전쟁은 숫자가 아님을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고 이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페르시아 정복을 감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그리스의 보병은 중장보병이었다. 중장보병은 장비의 무게로 인해 이동성이 매우 느렸다. 3,000킬로미터가 넘는 원정을 중장보병으로 이동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중장보병은 수비를 위한 군대이지 원정을 위한 군대가 아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를 깨닫고 원정과 정복을 위한 군대로 재편을 추진했다. 특히 페르시아 원정은 그리스 내에서의 전투와는 차원이 달랐다. 전투가 벌어지는 지형이나 적군의 전술이나 군대의 형태 등은 상상을 초월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원정을 위한 제국형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병종과 전술, 그리고 다양한 지형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우선 직업군대를 만들었다. 약탈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군대가 아니라 진정한 전사로서 명예를 중시하는 프로페셔널한 군인을 만드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모든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 최우선을 두었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용감하고 강한 리더는 모든 군사들에게 사기를 드높인다. 알렉신드로스는 황금갑옷을 입고 항상 가장 먼저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빽빽한 적진으로 뛰어들라고 했을 때 기어이 승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렉산드로스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먼저 적진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주력부대를 ‘컴페니언’이라고 불렀다. 이는 ‘동지, 친구들로 이루어진 부대’라는 의미였으며, 그들을 소중이 여겼다. 알렉산드로스는 정복지에 대해서는 약탈 등 잔혹한 행위를 일삼은 가혹한 정복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정복원정을 진행하면서 보여준 리더로서의 존재감과 변화에 대한 과감한 돌파력은 현대의 리더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적군과 온 역사가 칭송한 관용의 군주 ‘살라딘’
1차 십자군 전쟁에서 십자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군이 강해서라기보다는 이슬람 국가들이 단합하지 못했던 것이 주된 이유였다. 어설프게 이루진 단합은 오히려 상대방을 더욱 자극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기 된다. 살라딘은 그의 삼촌인 시쿠르의 군대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합류해서 침략군을 제거하고 이집트의 지도자를 제거하는데 공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시크루가 사망하게 되자 서른살의 살라딘은 시크루의 부장들에 의해 후계자로 오르게 된다. 그들이 살라딘을 후계자로 올린 이유는 살라딘의 조용하고 온화하며, 소극적인 성격에 자신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라딘은 누구보다 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살라딘은 존경보다는 지지를 추구했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들은 쿠르드족인 살라딘의 부상을 달가와하지 않았으며, 이로인해 이슬람 국가간에는 잦은 마찰이 일어났고 십자군은 이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감행하여 살라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이후 살라딘은 모든 이슬람 국가를 직접 방문하여 화해하고 휴전을 유도하며, 십자군에 대항하기 위한 명분을 확보했다. 당시 십자군은 중장갑으로 무장되어 백병전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했으나, 병력수의 부족과 혈통적 자존심과 혈기왕성한 젊은이들로 구성된 군대는 지휘체계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살라딘은 이슬람 지역의 가장 혹한 기후인 7월에 집중적인 전투시기로 삼았다. 중장갑으로 무장한 십자군은 무더위에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불을 피워 십자군 진형으로 열기와 연기를 날려 보냈다. 이에 십자군들은 갑옷을 벗어던지고 강물로 뛰어들면 거기에는 이슬람 군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십자군은 살라딘군에게 대패를 하게 된다. 이때 살라딘은 점령한 예루살렘 기독교인들의 퇴로를 열어주고 군사를 딸려 보내서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날 군사를 곳곳에 배치하여 가혹한 행위가 발생하는 것을 철저하게 예방하였으며, 가난한 사람들과 노예들에 대해 자비를 털어서 그들을 구제했다. 이는 살라딘 휘하의 장수 또한 살라딘을 따라 그들의 사비를 털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동참했다. 당시 종교적 상황은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원수와도 같은 존재였고 1차 십자군 원정시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이슬람교도들에게 대한 만행으로 인해 유럽에서는 예루살렘 내의 기독교인들의 안전에 대해 절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살라딘의 결정과 행동,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이슬람 최고 사령관이 행동으로 실천했다는 점은 유럽인들에게 큰 감동과 충격주었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연옥에 살뜰하게 꾸며진 살라딘의 거주지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이교도인이지만 그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이 책은 15명의 전쟁의 고수들이 나온다. 대부분 열악한 조건 속에서 승리 포인트를 찾아내고 이를 승리로 연결시키고야 마는 그들의 통찰과 진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행동력과 실천력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승리는 정적인 리더가 아닌 동적인 리더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되어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서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는 리더들이 보이지 않는다. 뒤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리더들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느낌이다. 현재와 같이 불확실성이 강하고 무슨 일이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세상 속에서 이를 제대로 인지한 통찰력을 가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며 앞서가는 리더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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