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테스트 합격점, 이후 과제 이어지지 않아 기술 소실 우려

지난 2022년 3월 국내 스마트 항만을 구축하는 국책연구였던 ‘IoT기반의 지능형 항만 구축’이 마무리 됐다. 해양수산부의 주관으로 진행됐던 이번 연구개발은 2019년 5월부터 추진된 사업으로 연구개발 시제품을 부산항터미널(신선대 부두)에 적용해 현장 실증을 위한 6개월간의 통합테스트까지 마쳤다. 테스트를 마친 후 결과 평가회에서 터미널 관계자로부터 업무에 실질적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 받았다. 하지만 이 기술은 시장에서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 연구에 참여했던 부산대의 의지로 기술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연구개발로 만들어진 기술들이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IoT기반의 지능형 항만 구축 R&D는?
세계의 선진항만들은 스마트 항만의 지능적 운영을 위해 플랫폼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국내에서도 스마트 항만 구축을 위해 진행한 사업이 IoT기반의 지능형 항만 구축 사업이다. 항만 기술들은 기업이 먼저 개발에 나서기 힘들기 때문에 정부 연구과제로 시작됐고 수많은 기관과 기업이 참여했다. IoT기반의 지능형 항만 구축 사업은 자동화 항만을 넘어 지능화 항만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 과제였다. 자동화 항만이 항만 물류 프로세스 자동처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사업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같은 스마트 기술을 접목해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항만의 경쟁력과 안전을 확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총 4가지 핵심기술 개발을 목표로 했다. 첫 번째로 IoT 디바이스와 스마트 웨어러블 장치 및 이들 장비로부터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게 하는 통신망의 구축, 두 번째로 이들 대용량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기 위한 IoT통합플랫폼 기술이다. 세 번째는 클라우드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서 항만물류의 전 작업을 지능화하는 기술이며 네 번째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기술을 이용해 항만의 안전을 확보하는 기술이다. 최종적으로 이 사업은 네 번째 항만 안전을 확보하는 기술에는 좀 더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현업 관계자들에게 합격점을 받은 기술들이다. 

스마트 항만 기술, 사장 위기
이번 연구 개발을 통해 구현된 스마트 항만기술들은 기술이 부족하거나 현업과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지능형 항만 구축의 실질적인 구현을 위해서는 여러 기관이 공동 개발한 시제품 수준의 IoT통합 플랫폼 제품화는 물론 지속적인 유지보수 등을 위해 IT서비스 창구의 단일화가 필요한데 워낙 많은 기관들이 참여하다보니 이를 통합해 제공할 주체가 부재한 상황인 것. 당시 연구 개발을 총괄했던 부산대 배혜림 교수는 “약 400억 원을 들여 60여개가 넘는 기관이 참여해서 만들어진 기술”이라며 “사용자 측에서는 도입을 위해 모든 기관과 계약을 할 수 없으니 창구를 단일화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개발된 요소 기술 하나하나를 사용자가 60개가 넘는 기관과 직접 계약해서 사용하게 되면 유지보수에 대한 문제가 있으니 일원화된 창구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곳도 많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부의 연구개발과제가 실사업으로 연결된 케이스는 많지 않다. 성공적으로 연구 개발을 마무리 했어도 현업에 적용하는데 괴리기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과제는 사용자측의 요청이 있었고 계약 주체만 있다면 바로 적용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연구 과제를 총괄했던 부산대에서 스마트체인이라는 법인을 세워 관련 사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체가 있어도 갈 곳 없는 기술들
부산대에서 만든 스마트체인이 관련된 기관들과 협의를 하고 있지만 사실상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사실상 요소기술에 대해서 기술이전 협약이 필요한데 아직까지는 지켜보자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일부 기술이전 의향을 밝히는 곳들도 있지만 기업들은 공동마케팅 정도에 동의하는 수준”이라며 “기술에 대한 공동마케팅을 통해 실제 사용자가 나타나면 그때 판매행위나 나머지 작업들에 대해 협조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은 관련기관들이 직접적으로 나서는데 한계가 있고 이에 대한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한 관계자는 “연구개발에 참여한 기관들은 학교, 공공 정책연구원이 있고 나머지는 대부분이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라며 “학교나 공공 정책연구원은 개발된 기술을 제품화해서 시장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것이 어려운 조직이다. 또 민간 기업들은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는 영업활동에는 관심이 있지만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에 뛰어드는 것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즉 판매가 되는 시점에는 동참하겠지만 그 과정에서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생각이다. 부산대 교수이면서 스마트체인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배혜림 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다고 설명한다. 그는 “스마트 항만관련해서 국제 행사에 가보면 외국도 우리와 비슷한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다. 다만 국내와 해외의 차이는 꾸준함이다”라며 “시작은 우리가 비슷하게 하지만 나중에 보면 국내 기술은 사장되고 외국 기술들이 시장을 잠식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결국 플랫폼 싸움인데 플랫폼은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들어내고 다른 것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며 “세계적인 기술 흐름이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 기술이 사장 되면 결국 해외 기업들에게 시장을 모두 내주게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갈 곳 잃은 항만기술, 올 상반기가 분수령
연구개발을 통해 만들어진 기술을 고도화 시키고 제품화 한다는 것은 연구개발을 잘 마무리했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인력과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마트체인은 아직까지 기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체인이 무너지는 순간 약 400억 원을 들여 60여개가 넘는 기관이 만들어낸 스마트 항만기술이 그대로 묻힐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는 국가적인 손실이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까지 새로운 모멘텀이 없다면 스마트 항만기술은 묻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배혜림 교수는 “현재는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지원 사업자로 선정돼 받은 자금을 통해 운영하고 있고 상반기 안에 제품화를 통해 사용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서도 “상반기가 지날 때까지 사업화가 어렵다면 동력이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기술은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러한 부분에서 관련 연구개발에 참여했던 기업들 중 일부는 아쉽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국책 연구과제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 사례라는 것이다. IoT기반의 지능형 항만 구축에 참여했던 한 업체 관계자는 “이번 과제의 결과물을 놓고 봤을 때 국내 연구개발의 한계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며 “연구개발은 잘하지만 제품화하고 운영할 수 있는 예산이 없어 좋은 기술도 실제 사업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잘 만들어진 기술들이 실제 활용될 수 있는 기반 정책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마트 항만기술 공론화 필요
현 시점에서 스마트 항만기술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장 좋은 것은 정부의 지원이다. 후속과제를 만들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제품화를 통해 시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때문에 스마트체인에서는 스마트 항만 기술이 공론화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배혜림 교수는 “우리가 만들 기술들이 현업에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한 공론의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기술이 이대로 사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용자와 연구자, 관이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기술이 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마트 항만 기술은 해운물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다이나믹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시작된 연구였다. 영리가 목적이 아닌 연구 과제를 총괄했던 교수조차도 기술이 사장되는 것이 아쉬워 법인을 만들어 어렵게 1년여를 끌고 왔다. 테스트베드를 진행했던 터미널도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스마트 항만기술과 스마트체인을 둘러싼 환경이 더 이상 미래를 볼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 기술들이 사장되더라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기술들이 그대로 묻힌다면 개발을 위해 들였던 비용과 시간은 의미 없는 행위가 될 것이며 향후 시장은 더 이상 국내 기업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 항만 기술에 대한 연구와 공론화의 장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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