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열 / 한국경제신문

휴탈리티(Hutality)는 세상에 없던 것을 완성도 높게 만들어 내는 재능(Talent)과 그것이 현재의 세상과 앞으로의 세계에 갖게 될 의미 체계를 만들어 내는 인간 특유의 속성인 Humanity가 결합되는 것으로 저자가 만들어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용어이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영역을 잠식해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앞으로 사람은 이전의 모습대로 살아가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경제, 사회 전반의 모든 것이 AI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기
업은 인재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하는가? 그리고 사람들은 AI와 경쟁을 하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AI와 차별된 영역을 정의하고 이에 집중하는 것이 맞는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고민을 주고 있는 질문들이다. ‘휴탈리티’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고 있는 책이다.

‘인재’라는 허상을 재정립 하라.
최근의 추세를 보면 기계의 디지털적 완벽함은 가치를 넘어 숭상을 받고 있는 반면에 인간 본연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결함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는 기업에서 바라보는 인재상에도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조직에서 언급하는 인재상을 보면 도전, 열정, 창의 등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앞세우고 있지만 실상 조직에서의 인재는 지정한 분야에 대해 일정 수준이상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필요 지식과 기능을 갖추는 것도 인재가 갖추어야 할 필수사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는 인재의 본질적 개념에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식과 기능은 이제 기계에 의하여 잠식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재의 본질적 역량은 크게 기술역량과 해석역량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술역량은 정보나 지식을 학습하고 이를 처리하는 인지성과 알고 있는 것을 필요할 때 실제로 활용하고 행동하는 기능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해석 역량은 경험에서부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의미체계를 만들고 변화에 대해 주체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역량으로 경험을 수용하는 감수성과 경험을 통해 부딪치는 여러 복잡한 상황에 대해 의미를 만들고 이를 연결하는 능력인 감지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기술 역량이 주도해야 하지만 이를 소비자가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의미와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은 해석역량이 주도해야 한다. 창조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할 때 완성되는 것이다. 요즘의 인재는 대부분 기술 역량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에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 해석역량에 오히려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인자는 신념과 이익이다. 이러한 신념과 이익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기술역량이 아니라 해석역량이다. 또한 제한된 자원을 끌어오거나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더 중요한 것’과 ‘모두에게 더 좋은 것’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기술적 관점의 질문의 비중보다 사고적 관점의 질문의 비중이 크다. 또한 초지능, 초연결로 대표되는 현 사회는 기술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반면 그 유통기한은 이전과는 달리 급속도로 짧아지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 시대의 가장 중요한 역량 중의 하나는 빨리 배우고 빨리 폐기하고 다시 배우는 사이클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 사이클은 기술 역량에 기반한 것과 같이 보이나 궁극적으로 해석 역량에 기반한 것이다.

AI, 빅데이터를 이기는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기계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 간에 통합하여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데 기술적 문제 이외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점이다. 즉 네트워크이다. 사람은 서로 연결해서 역량을 극대화하고 최적화하기에는 매우 어렵다. 기계들이 연결되어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분석함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영역은 이제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데이터가 어떠한 맥락에서 수집되고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기계는 판단하기 어렵다. 물론 아날로그적 환경 속에서 정보화가 가능한 영역에서는 기계가 맥락을 감안할 수 있겠지만 사람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다르다. 사람의 감정은 아직 데이터로 변환시키기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데이터의 맥락을 파악하고 이를 해석하는 영역은 당분간 기계로의 대체가 어려울 것이다. 사람과 관련된 데이터는 맥락을 이해하고 여기에 의미를 부여해야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만의 강점이다. 해석역량은 경험을 받아들이는 감수성과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여 가치를 만들어내는 감지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감수성과 감지성은 궁극적으로 바로 내재화(Internalization)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재화란 경험의 시그널을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해석하여 자신만의 의미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내사화(Introjection)를 내재화로 착각하고 있다. 내재화는 완전히 소화한 상태라면 내사화는 소화가 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이 AI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내사화가 아닌 내재화에 익숙해져야 한다. 내재화에 익숙해졌다는 것은 바로 AI와 차별화되는 해석 역량이 향상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재상이 아니라 인재성에 집중하라
조직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설정한 인재상은 인재상이기 보다는 조직이 원하는 인력의 조건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수 있다. 인재상은 존재하기 쉽지 않다. 인재상을 설정하고 이에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다. 이젠 인재성을 정의하고 인재성을 측정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인재성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술역량과 해석 역량에 대한 균형성을 갖추고 있는 정도로 파악해야 한다.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이나 정보에 대한 숙지정도를 통해 기술역량을 파악하고 감수성과 감지성을 통해 경험을 내재화하여 가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해석역량을 파악해야 한다. 해석역량은 조직이 가지고 있는 가치판단, 판단에 대한 사실적 기준, 기준에 기반한 행동 지침에 의하여 경험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측정기준이 수립되어져야 한다. 프로네시스(Phronesis)란 실용적 지혜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지식과 경험의 융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로 느낌표를 의미한다. 조직이 우선적으로 프로네시스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프로네시스를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조직이 인재성을 정의하고 그 인재성에 맞추어 인재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실패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실패는 귀중한 경험과 지혜가 될 것이지만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면 조직이나 개인에게 있어서 가장 비효율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고 부여하지 않음에 따라 동일한 사항이나 노력의 결과는 천양지차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고 무엇인가를 선택함에 있어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사람 고유의 영역이다. 이 고유의 영역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AI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사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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