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으로 공포와 두려움 극복…오늘도 병원으로 향한다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MERS)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높은 치사율과 빠른 확산 속도, 바이러스 변이 가능성 등으로 인해 200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유행한 그 어떤 전염병보다 큰 파장을 일고 있다. 질병 확산에 대한 공포로 일상적 활동 자체가 위축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 이들이 있다.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치료제가 전무한 상황이고, 바이러스 변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공포와 두려움을 양산하고 있지만 병원 내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병원으로 발길을 향할 수밖에 없다.

평소 자부심을 갖고 하던 일인데 메르스 때문에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며 그들은 오늘도 병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메르스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의약품 & 병원물류 서비스 최강 기업 용마로지스의 서비스맨들을 현장에서 만나보았다.

망설였지만 발이 먼저 병원을 향하다
메르스가 한참이던 6월 중순 용마로지스 최 대리를 만났다. 하루에도 몇 명씩 죽는다는 소식과 병원에서 전염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얘기에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고 했다.

“솔직히 병원 앞에서 한참 망설였어요. 잘못해서 전염되기라도 하면 가족들한테까지 퍼질 수 있으니 걱정하고 또 했죠.”

그래도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가는 길에서도 ‘수술실까지 들어갈 수는 있을까, 각 부서에 있는 선생님들은 잘 계실까, 병에 걸리면 어쩌지’ 등의 오만가지 걱정이 물밀 듯이 들이닥쳤다고 한다. 9년 간 일주일에 3~4번씩, 수백 번도 더 들락날락했던 병원이지만 요즘처럼 병원에 들어가는 게 두려웠던 적은 없었다는 게 최 대리의 얘기다.

최 대리는 병원 위탁재고관리전문가(Consignee Inventory Specialist, 이하 CIS)다. 심혈관 질환과 말초혈관 수술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만드는 제조사를 대신해 수도권에 있는 90여 개의 대형병원에 배송하고, 그에 따른 병원 내의 재고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CIS들은 병원 내부까지 들어가서 업무를 해야 한다.

20여 개가 넘는 부서에 자재들을 입고시키고, 수술 후에 재고를 떨어내는 업무를 전산으로 관리하는 것이 CIS의 중요한 일이다. PDA를 이용해 바코드를 스캔하고, 보관되어 있는 재고량을 전산 재고와 맞는지 매일 확인한 뒤 그 결과를 무선으로 전송해야 한다.

그러나 최 대리는 그런 업무적인 것보다 더 신경써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로 간호사, 방사선 선생님과 같은 분들과 유쾌한 소통을 하는 것이다. 환자와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밤낮으로 간호해야 하는 의료인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지 못하면 자칫 환자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때는 다들 분위기가 좋지 못한 상황이다. 모든 의료진들이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까지도 심혈관실, 혈관조영실, 내시경실을 내 집 드나들 듯 다녔는데 언제 부터 출입이 금지됐다.

최 대리는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힘차게 인사를 했으련만, 메르스때문에 심혈관실 밖에서 제품을 건내고 있다고 했다. 평소와 달리 문 밖에서 만나 짧은 인사만 건넸지만 병원에서 24시간 근무하는 의료진들을 보며 병원에 오길 망설였던 자신을 반성하고 다시금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최 대리는 “환자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자재가 없어 안타까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며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고, 이 일은 9년 동안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니 내가 꼭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간략한 인사를 마친 뒤 다음 병원으로 향하는 최 대리의 발걸음은 아주 씩씩했다.

전국 380명 기사들 모두 “환자가 우선”
용마로지스 박원식 배송기사(Delivery Specialist, 이하 DS)를 만났다.

박 DS 역시 최 대리와 같이 많이 걱정했다고 했다. 특히 박 DS가 담당해야 할 곳 중에는 메르스 확진 병원이 있었다. ‘왜 하필 내 코스에 메르스 확진 병원이 있는 건지’라며 원망 아닌 원망을 하곤 했었다고 했다.

기자가 만난 날 박 DS는 메르스 확진으로 폐쇄된 병원 인근에 있는 S병원에 의약품 2박스, 수술용품 3박스를 가져다줘야 했다. 메르스 때문에 일반 의약품의 수요는 줄었지만 마스크, 1회용 장갑, 손세정제, 위생가운 등의 위생진료용품은 물동량이 급격하게 늘어나 병원을 찾아야 하는 일은 더 늘었다고 박 DS는 전했다.
배송을 나가려고 하는데 배송관리를 맡고 있던 김 대리가 박 DS를 불러 세웠다.

“박 DS님, 수술용품이면 수술실 로젯까지 배송해야 되네요. 중앙공급실에서 검수도장을 받아서 수술실 로젯 두 군데에 배송하고, 다시 검수증을 구매팀에 갔다 줘야 돼요.”

이 얘기를 전하는 김 대리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이런 때일수록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안하지만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박 DS 역시 김 대리의 마음을 잘 안다고 했다. 배송을 다녀오면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를 먼저 챙기는 이가 김 대리라며, 위기일수록 함께 헤쳐 나가야 하지 않겠냐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술을 해야 하는 절박한 환자가 있다는 게 오히려 가슴이 아린다며, 이는 전국 8만여 개의 의료기관에 의약품과 진료용품을 배송하고 있는 380명의 다른 DS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힘차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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