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선미 개방형 램프 아이디어 주목

범한판토스(대표 배재훈)가 벌크선을 활용해 길이 13.7km, 무게 1,400톤, 직경 23.4cm에 달하는 대형 해저케이블 운송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강원도 동해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약 2만 km(11,013 노티컬마일)의 대장정이다. 특히 국내 최초로 대형 해저케이블 운송에 벌크선을 활용함으로써 국내업계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물류신문사는 단독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현장 모습과 실무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업계 선입견 날린 솔루션…해외 관계자도 극찬

강원도 동해항의 한 부두. 안전모를 쓴 직원들이 매서운 겨울 바닷바람도 아랑곳 하지 않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큼지막한 화물선 위로 크레인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매달린 대형 턴테이블(Turn Table)은 100명이 족히 올라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크고 두꺼운 해저케이블이 조심스레 감기게 된다.

‘범한판토스 동에너지 해저케이블 T/F팀’도 서울 본사에서 달려와 자리를 지켰다. T/F팀은 이번 프로젝트의 발굴부터 수주까지 전 과정을 담당했다.

신현철 T/F팀 수석부장은 “이번 해저케이블 수송은 고객사인 LS전선에서 국내 전선업계 최초로 유럽해저케이블 시장에 진출하는 수출 건이다. 범한판토스는 덴마크 국영에너지 회사이자 유럽 최대 풍력발전 업체인 동에너지(Dong Energy)에 1,600만 유로 규모의 150v급 해저케이블과 150, 275kV급 지중 초고압 케이블과 자재를 운송한다. 국내 최초이자 최대, 최장거리의 운송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수주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해상운송이라 선박을 보유한 기업에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일. 또 전선업계는 범한판토스가 항공과 포워딩 같은 물류분야에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만, 오프쇼어(Offshore) 사업에 대한 경험은 부족하다고 봤다.

김준완 T/F팀 과장은 “우리는 업계의 선입견을 깨뜨리고, 수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선적과 환적에 대한 솔루션을 만들었다. 엔지니어링 회사와 함께 직접 시뮬레이션을 하는 등 솔루션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검증했다”며 “그 결과 업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솔루션을 탄생시켰고, 유관 업체들이 모인 자리에 선보였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매우 독창적이며, 굉장한 아이디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고 말했다.

실제 동에너지 총괄 프로덕트 매니저는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범한판토스의 솔루션을 보고 “오프쇼어가 활성화된 유럽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훌륭한 제안(Great Proposal)”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심사 결과 범한판토스의 제안은 테크니컬 포인트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최종 낙점을 받았다. 아이디어로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선미 개방형 램프로 휘는 정도 최소화 시켜

해상 운송을 위해 범한판토스는 벌크선의 일종인 ‘선미 개방 램프형 중량화물 운반선(Stern Ramp Multi-Purpose Carrier)’을 이용했다. 기존의 해저케이블은 속도가 느린 자항선(Self-Propelled Barge : 자체 항해능력을 갖춘 바지선)에 실어 운송해왔다. 그동안 벌크선이 자항선에 비해 고속항해가 가능한 장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저케이블 운송에 이용되지 못했던 것은 수평환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턴테이블 작업을 지켜보던 류권열 T/F팀 과장은 “해저케이블을 너무 많이 구부리면 손상되는, 즉 ‘최소 굽힘 반경(Minimum Bending Radius)’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능한 수평 형태로 작업을 해야 한다. 우리의 아이디어는 휘는 정도를 최소화시키는 것에서 출발했다”라고 말했다.

범한판토스의 솔루션은 지상과 선박 화물창의 수평을 유지하면서 해저케이블을 감는(Coiling) 방식이다. 우선 직경 17m, 무게 150톤에 달하는 턴테이블을 지상에서 조립한 뒤, 선박 크레인을 이용해 화물창에 안전하게 선적한다. 그리고 선미의 램프를 개방해 배 안에서 턴테이블을 돌려 케이블을 감는다. 자항선의 장점을 일반 중량화물 운반선에서 구현한 셈이다.

류 과장은 “솔루션의 핵심은 운송선 선미와 포설선(Cable Laying Vessel)의 선미를 연결(Stern to Stern)해 환적하는 것이다. 기존 방식은 턴테이블을 육상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해저케이블을 감은 다음 포설선이 와서 되감거나 자항선을 이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우리 작업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처음이고 해외에서도 램프를 개방하는 환적 사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비용·작업시간 획기적으로 줄여

범한판토스의 솔루션은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시킬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김준완 과장은 “기존 방식은 포설선을 해외에서 빌려와야 한다. 문제는 속도다.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 포설선이 동해에 도착하는데 약 4~50일이 걸린다. 그 기간에도 용선료는 매일 부과되는데, 풍랑이라도 만나면 작업 일수가 늘어나면서 비용도 크게 상승한다. 즉,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다. 우리의 솔루션은 동해에서 케이블을 실은 벌크선이 유럽 현지에 도착하는 날에 맞춰 현지 작업장에 가까이 있는 포설선을 빌리면 된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범한판토스는 이번 프로젝트가 기존 방식 대비 1개월가량(약 1/3) 작업 시간을 단축시키고, 비용도 최대 3~40%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양한 이력 살려 아이디어 창출해

동해는 서해와 달리 조수 간만의 차가 크지 않다. 그렇지만 눈앞에 출렁거리는 바다가 만만해보이진 않았다. 자칫 선박이흔들리면서 중장비들이 부딪히면 큰 사고가 날 것 같았다. 신현철 T/F팀 수석부장은 기자의 걱정에 기우일 뿐이라고 말했다. 신 수석부장은 “겨울철 동해항 해상 조건이 썩 좋진 않다. 강한 너울성 파도 때문에 중량 케이블 장비를 선박에 적입하기 쉽지 않더라. 한참 고민하다 항만예인선 2척을 이용해 선박을 안벽 방향으로 강제적으로 밀어 운송선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고안해냈다”고 말했다.

이러한 아이디어 창출은 T/F팀의 노력에서 나왔다. T/F팀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1년여 간 전문 지식을 쌓았고, 닥치는 대로 해외 사례를 뒤졌다. 솔루션을 만들면,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과정이 반복됐고, 실패하면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프레젠테이션 준비도 수십 번 했고, 수주를 받은 뒤에도 고객사와 내부 부서를 찾아다니며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특히 팀원들의 다양한 이력은 솔루션 개발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엔지니어링이나 선박, 포워딩 등 각자가 가진 해박한 지식이 조합되면서 아이디어가 쏟아졌던 것.

힘든 일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김준완 과장은 “나부터 굳어버린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더라. 기존 방식이 옳다는 생각을 깰 수 있었던 것은 ‘왜 안 되느냐’고 스스로 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류권열 과장은 이번 일로 얻은 것이 많다고 했다. 그는 “동에너지 관계자들이 운송 과정에서 어드바이저로서 현장을 참관했다. 부담감이 적지 않았지만 고객사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봤다. 작업이 끝나고 범한판토스와 LS전선이 유럽, 미주 업체들보다 수준이 높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그동안의 고생을 다 보상받는 느낌이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발상의 전환이 미래다”

△이용진 상무
범한 판토스는 자사가 지향하는 기업이념인 ‘최고의 가치로 고객 감동을 실현하는 초일류 물류 파트너(Vision 2020)’의 성과라는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용진 수출사업부 담당 상무(사진)는 “이번 프로젝트는 범한판토스가 차별화 되고 창조적인 물류 수행 능력을 입증한 계기일 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 국내기업의 글로벌 물류 경쟁력을 확보해 주는 상생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이 상무의 말처럼 이번 해저케이블 운송은 범한판토스 뿐만 아니라 고객사인 LS전선과 동에너지 모두 윈-윈(Win-Win)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사례다.

선적이 완료된 해저케이블은 내년 2월 경 목적지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포설선으로 최종 환적되어, 동에너지가 영국 동남 해안 지역(Westmost Rough PJT)에 건설하는 해상 풍력발전 단지에서 사용될 예정이다.

신현철 수석부장은 “발상의 전환이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해저케이블 운송에 대한 차별화된 노하우를 보유하게 된 것은 물론 고객사의 신성장사업을 돕고, 물류기업도 새로운 사업영역을 창출하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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