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고 있는 ‘생활 속 물류, 택배’

물류산업, 불공정·불합리 뿌리 뽑는다 - 6

버림받고 있는 ‘생활 속 물류, 택배’

 

‘물류의 꽃’이라고도 하고 ‘생활물류’라고도 평가되는 택배산업. 그러나 그 속은 전혀 화려하지도, 희망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택배 종사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번 기획을 위해 택배업계 종사자들에게 취재와 기고를 요청했으나 자신들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기피현상을 보였다. ‘화주들에게 밉보여서 좋을 일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 국내 택배시장은 ‘개선할 것이 있지만 개선하자고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시장이다. 분명 운송계약과 거래관행들이 불공정하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피해를 보고, 택배 현장 종사자들이 삶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그것을 뿌리 뽑을 묘안이 안 나온다. 게다가 의지도 약하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꾼다’는 화물연대의 캐치프레이즈에서 따온 것이기는 하나 ‘택배를 멈춰 세상을 바꿔볼까’라는 다소 거친 말이 업계에 회자되고 있다. 합리적 길 찾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답한 심정들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나 화주기업, 택배 서비스를 받는 일반국민들은 시장에 회자하고 있는‘택배를 멈춰보자’는 말이 시사하는 바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 같다.
물류신문사는 ‘물류산업, 불공정·불합리를 뿌리뽑는다’를 테마로 하는 시리즈 기획을 11회에 걸쳐 연재한다. 그 여섯 번째다. <편집자>

[연재순서]
1. 물류기업 하기 좋은 환경? “아니다!” / 7월 15일자
2. 왜 물류산업은 서자(庶子) 취급 받나  / 8월 1일자
3. 편법을 양산하는 경직행정의 비극 / 8월 15일자
4. 왜 3PL시장에는 공정한 룰이 없나? / 9월 1일자
5. 물류시설, 건축 목적에 부합하도록 관련법 적용 필요 / 9월 15일자
6. 버림받고 있는 ‘생활 속 물류, 택배’/ 10월 1일자
7. 말로만 3PL 육성, 화주기업만 배 불린다 / 10월 15일자
8. 불합리한 법·제도, 현실감 상실의 시대 / 11월 1일자
9. 열심히 일하는 물류인, 왜 못사나 / 11월 15일자
10. 물류기업을 통해 비자금이 형성된다? / 12월 1일자
11. 종합 대토론 / 12월 15일자
*이상의 주제와 연재순서는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택배단가 10년 전에 비해 1,237원 낮아져’, ‘택배비 200원 올려 달랬더니… 다른 택배업체로 옮긴다는 협박성 통보 돌아와’, ‘10% 악덕 화주사만 바뀌면 택배시장 전체가 확 달라진다’
이는 지난 8월 물류신문이 별책으로 발행한 <택배문화> 2011년판 기획 ‘택배요금 현실화 프로젝트’에 실린 기사의 제목들이다. ‘10% 악덕 화주사만 바뀌면…’이란 제목에서 택배업체들은 ‘희망’을 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10% 화주사가 전체 취급물량이나 매출에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이 된다면 어떨까? 문제는 이들 물량 많은 화주고객의 공정하지 못한 게임 룰 강요가 택배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데 있다.

화주들 운임 깎기 ‘횡포’ 수준

[이런 불공정 관행이 있다] 국내 택배업체들은 고객기업간의 관계에서 공정한 룰이 없다고 생각한다. 택배업체 영업팀장 급 이상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택배시장 공정성 수준과 불공정 관행 해소방안’을 주제로 한 간단한 설문을 실시했다. 설문결과 응답 택배업 종사자 전원이 양자간의 관계가 ‘공정하지 않다’거나 ‘매우 불공정하다’고 답했다.
설문결과, 운임을 깎기 위한 화주들의 ‘횡포’(이는 택배 종사자들의 다양한 표현을 한 단어로 집약해 본 것이다)에 대한 지적이 가장 많았다.
이들에 따르면 거래 중인 택배사에게 타 택배사의 견적가를 제시하면서 운임을 낮추라고 요구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다. 이에 대해 한 응답자는 “택배사를 변경할 의사가 없거나, 변경할 수 없는 계약조건하에서 이 같은 요구를 한다는 것은 택배사간의 경쟁을 부추겨 운임만 낮추어보려는 속셈”이라고 꼬집었다.
고객화주의 일방적 계약파기는 물류시장의 고질병이다. 기업간 거래관계에서 ‘갑’이라는 지위를 남용, 거래기간이 명시된 서면 계약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절감이라는 명목 하에 기존 거래처를 무시하고 저비용의 새로운 거래처를 선택함으로써 시장의 물을 흐린다. 거기다 ‘시장논리’까지 동원된다. ‘택배업계 내 업체간 출혈경쟁, 다시 말해 공급과잉으로 운임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택배업계 ‘自省’의 목소리도 높아

택배업계 종사자들은 이러한 화주기업의 시장논리를 무조건 ‘화주기업들의 독단’이라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설문 응답자들은 ‘우리에게도 반성할 것이 많다’는 자성(自省)의 목소리를 설문지에 담고 있다.
이들은 적절한 가격을 통한 공정한 수익성 확보보다는 물량확보 중심의 영업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택배업체들의 경영한계와 사업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화물유치를 위해 기존 택배업체의 서비스 단가 정보를 파악, 서비스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만으로 물량을 유치하려는 영업형태가 난무한 것이 우리 택배시장의 현주소다.
특히 대리점체제의 아웃소싱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업체의 경우 ‘대리점 수익구조를 위해 일정 물량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백마진을 제공하는 등 불공정 관행에 대한 화주들의 인식을 전환시키기는커녕, 그러한 ‘리베이트 수수나 운임 깎기는 마땅하다’는 인식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택배운송계약 “있으나 마나 한 것”

화주기업과의 택배운송계약이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하다는 것은 택배업계 종사자들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는 대목. 계약서 상 계약기간에 관계 없이 타 택배사와 접촉하여 운임 낮추기를 획책하거나 택배사를 변경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계약기간 준수를 요구하면 전체 물량 중 최소 물량만 기존 택배사에 출고하고 대부분 물량을 변경 택배사로 보내는 ‘강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본지는 지난 530호(2011년 9월 1일자)에서 택배사와 유통업체간 백마진(Back Margin)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 바 있다. 택배업체들로서는 리베이트나 추가지원을 요구하는 화주가 밉상일 수밖에 없다. 밉상이나 때리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심정이다.
일정 규모의 물량을 발송하는 거래처의 경우, 대부분 계약 시 리베이트를 요구한다고 한다. 박스 당 정액 또는 전체 매출 대비 일정비율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한 톨의 물량이 아쉬운 택배사로서는 말 한마디 못하고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기존 유통업계나 전자상거래 등 신 유통업계의 택배물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이 시장에서 택배업체들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먹을 거리는 많으나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 이 시장이 갖는 한계다.
리베이트와 별도로 작업 인원, 박스 테이프, 운송장, 창고 무상제공 등 지원요구는 상시 이뤄진다. “이미 계약 시 운임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것이 화주기업의 인식이겠으나, 계약 운임 자체가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가적인 무상지원 요구를 받아야 하는 택배업체로서는 몹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항공서비스나, 도선 서비스가 필요한 택배의 경우도 항공료, 도선료 등이 전혀 반영이 되지 않는다.

정책 형평성 부재… 민간업체 경쟁력 약화

[제도적 불합리는 없나?] 정부의 정책이나, 법, 제도적으로도 택배산업은 형평성 있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택배업계는 정부의 택배산업 정책이 기존의 화물운송산업에 대한 정책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택배는 서비스 특성과 운영프로세스 등에서 타 화물자동차운송사업과는 전혀 다르다.
택배업계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내의 화물자동차운송사업에 ‘택배’에 대한 별도 정의가 없어 한 묶음으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에 증차가 절실한 택배업체들이 차량을 확보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책적 형평성에도 문제가 많다. 본지가 529호(2011년 8월 15일자 16페이지)에서 심도 있게 다룬 바 있는 것처럼 민간 택배업체들은 공공기관인 우체국이 화물차 증차 허용, 거점 구축에 대한 세금 투입, 공익근무요원 활용 등의 특혜를 보고 있다고 오래 전부터 꼬집어왔다.
업계에 따르면 우체국택배는 ‘우편법’과 관용차량규정의 특례적용으로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약 2,700대의 증차를 허용 받았다. 반면 민간 택배업체들은 2004년 이후 전혀 증차하지 못해 편법을 통한 차량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또 2002년부터 정부예산 약 1조 2천억원을 들여 전국에 25개 우편집중국을 설치하는 등 택배사업부문 자체 자금은 한 푼 안들이고 택배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우편법 제12조를 이용해 우편 및 택배물 구분 작업에 공익근무요원을 투입함으로써 불공정한 경쟁구조를 만들었다는 지적.
뿐만 아니다. 우편법 제5조의 ‘우편운송원의 통행권 보장’을 들어 택배차량의 통행과 주정차시 편의를 제공받고 있으나 민간 택배사들은 일부 지자체의 허용권역과 시간대에만 일시 주정차가 허용되는 등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불공정 신고센터 운영 등 강력한 방안 절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 설문에서 한 응답자는 불공정 신고센터와 같은 기구 운영을 제안했다. 택배는 물론 물류시장 전반에 걸친 화주와의 불공정 관행 해소와 피해구제를 주업무로 하는 공신력 있는 조정기구를 설립해 운영하자는 주문이다. 아예 정부차원에서 신고접수센터를 운영, 불공정업체를 공개하고 불공정 사례를 사회 이슈화함으로써 분위기를 쇄신할 필요가 있다는 강력한 제안도 있었다.
택배업에 대한 업종신설, 다시 말해 법제화 요구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며, 정부도 이에 대해 적극적인 검토를 해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설문을 통해 법제화, 제도화의 내용에 택배운임 인가제, 시장 수급 상황에 맞는 택배차량 증차 허용, 택배운임 가격 하한선 제도화, 화주들의 불공정성에 대한 공정위 신고제 등은 물론, 택배서비스 평가제도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며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했다.
한 응답자는 “택배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택배운임의 가격하한선을 제도화하여 택배 종사자들의 최저 근무여건을 보장해 주고, 거래관계를 무시한 일방적 계약 파기와 가격경쟁은 물론 입찰의 불공정성과 비합리적 부분은 공정위의 신고제를 통해 경고와 벌금 또는 강력한 제재조치를 시행함으로써 불공정 거래를 뿌리 뽑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택배업체들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불공정성에 대해서도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는 대목은 주목된다.
하지만 택배업종 신설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어렵다’로 가닥이 잡혀 있다. 용달업계의 강력한 반대와 택배차량 증차가 업종신설의 명분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을 들어 ‘추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업계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설문 응답자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근거한 차량증차 제한으로 택배업계의 만연된 불법 자가용차량 영업행위를 용인하는 우리나라의 법적, 제도적 구조적 문제와, 여론을 인식해 공정하지 못한 제도를 개선하지 못하고 택배법 제정을 늦춘다면 앞으로도 택배시장의 불공정 관행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체국택배와 민간택배 공정경쟁 구조 만들어야

‘우체국택배와 민간택배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은 민간택배업계의 숙원이 됐다. 이에 대해 택배업계 종사자들은 ‘우체국 택배사업의 민영화를 통해 법제도적 특혜를 차단함으로써 공정경쟁 구조를 만들자’라는 데 대부분 뜻을 같이한다. 이와 함께 우체국에서 독점하고 있는 서신류 배송에 대해 민간 택배업체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는 데도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한 설문 응답자는 “우체국이 택배시장 진입시 저단가와 창고 무상제공 등으로 마켓쉐어를 확보했다”면서 “전체 시장단가 하락을 주도하면서 성장했다면 이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시장의 질서회복에 한 몫을 담당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화주기업 운임깍기는 ‘제 발목 잡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주기업의 인식 전환이다. ‘화주기업의 전향적 인식전환’을 촉구한 택배업계의 한 종사자는 “고객기업의 성공은 고객 최접점에 있는 택배업체들의 서비스 질에 달렸다. 그러나 택배 서비스 원가 상승에도 불구, 지속적인 단가 인하를 강요하는 것은 상생하자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품질의 악화와 택배업계 수지악화를 초래해 결국 화주기업 자신들의 발목을 잡겠다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생과 상생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이 때, 화주들은 택배 단가하락이 배송사원들의 복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택배업계의 자정노력도 간과해서는 안될 시대적 덕목이다. 전체적인 택배수요를 감안한 사업계획 수립, 수익성을 고려한 내실경영은 물론 과당경쟁 때문에 화주들로 하여금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되는 시장’이라는 착각을 하지 않도록 택배업계 내에서의 강력한 자정(自淨) 운동이 펼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우 기자, soungwoo@k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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