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로 정복하는 골프 (24)

이윽고 그린에 오른다. 페어웨이를 가볍게 지나온 사람도 있고, 천신만고 끝에 지친 몸으로 오른 사람도 있다. 어떻게 올라왔건 일단 그린에 올라오면 안도의 쉼표를 찍게 마련이다. 마크를 하고 볼을 집어 닦는 게 쉼표다. 혹시라도 공에 흙이나 잔디가 묻어있으면 바로 굴러 가지 못하니까 깨끗이 닦으면서, 이삼 미터 거리면 한 번에, 그 이상이면 두 번에는 넣겠지 하는 기대와 욕심을 보인다. 너도 나도 기대만 앞세우지, 그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의 애무 개념은 보이지 않는다.

이 글 연재를 시작하던 초장에, 모든 그린이 2퍼트로 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첫 퍼트로 애무를 해 주고 두 번째에 넣으라는 뜻임을 밝혔다. 애무는 문전 가까이를 해줄수록 그 문이 부드럽게 열린다. 준비도 안 되었는데 단 번에 휙 집어 넣는 것은 폭력이며, 폭력을 행사한 대가는 다음 홀에서 반드시 치룬다고 했다. 그린 주변에서의 어프로치도 애무에 포함된다. 그러나 그린 위에서 두 번 세 번, 혹은 네 번, 집어넣지는 않고 애무만 하는 것은 헤매는 것이요, 그린에 대한 모독이라고도 했다. 문전만 더럽히는 짓인 것이다.   

그린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골퍼는 그린보수기를 반드시 가지고 다닌다. 그린에 공 자국이 생기면 동반자나 다음 선수를 위해서이기보다 그린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얼른 보수를 해주는 게  골퍼의 바른 자세이다. 흔히 골프장 이용료를 그린피(green fee)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그린을 훼손시키는 행위에 대한 변상금이란 뜻이다. 물론 그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페어웨이 샷을 할 때 뭉텅 뭉텅 떨어져 나가는 풀덩이에 대한 보상도 개념상 포함되기는 한다. 그러나 풀덩이를 주워 제자리 메꾸는 것은 리플레이스(replace) 또는 리페어(,repair)라 칭하며 그린과는 차별 된다. 마치 여성의 몸을 만지는 손과 구멍을 건드리는 심볼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퍼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나 중요한 지 모두 감이 오지 않을까? 골퍼에게는 퍼터 만큼 중요한 것도 드물다. 그래서 이런 한 토막 유머도 만들어 진다.
짓궂은 친구가 골퍼에게 물었다. “퍼터와 아내 중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 쪽인가?” 골퍼는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한다면 할 수 없지. 마누라를 버릴 수밖에.”
골퍼에게 퍼터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시사해 주는 조크가 아닐 수 없다. 

골프가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인생에서의 사랑놀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성취감을 좌우하는 것에는 명예도 있고 재물도 있지만 남녀 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단연 크지 않을까. 점잖게 말해 사랑이요, 직설적으로는 섹스다. 상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만족을 느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모두 받으려고 한다. 먼저 충분하고 만족하게 받은 뒤 줄 것을 생각하려 한다.

그린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린에서도 장난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기량이 부족한 중 하급 동반자들이 그린 주변에서 퍼덕일 때, 먼저 온 그린을 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마크하고 공을 집어 주어야 한다. 대개의 경우는 그 팀에서 제일 잘 치며 내기를 주도하는 리더 격이 먼저 그린에 공을 올린다. 마크는 반드시 공이 있는 자리 바로 뒤에 놓고 공을 집어야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동반자들이 보지 않는 틈을 이용해 동전 같은 마크를 홀 가까이 휙 던져 놓고 얼른 공을 집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십 여 미터 거리에 있는 공을 집으며 마크는 이삼 미터 정도로 가까운 곳에 던져놓는 것이다. 제 공을 그린에 못 올려 그린 주변에서 허둥대는 동반자 ― 중, 하급 골퍼 ― 들이 상급 골퍼의 그런 지능적인 속임수를 알 수가 없다. 동반자 중 예민한 사람이 있으면 고개를 갸웃하며 의심할 수는 있다. 슬쩍 본 거지만 공을 올렸을 때는 거리가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마크한 자리에 공을 놓고 퍼팅할 때 보니 아주 가까운 것이 이상하지만, ‘설마, 내가 잘못 봤겠지.’ 하고 넘기게 마련이다. 

물론 아무리 하수들과 골프를 친다 해도 매 홀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8홀 중 서너 홀에서만 그런다 해도 3~4 타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그게 얼마나 큰 장난인가. 그린에서 벌이는 사기극은 골프에 대한 모욕을 넘어 반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도 역시 캐디는 (약간의 경력만 있어도) 정확하게 상황을 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캐디는 말하지 않는다. 내기를 하고 있는 경우는 더더욱 입을 굳게 닫아야 한다. 하지만 눈빛에 담기는 혐오감까지 인위적으로 지울 수는 없다. 죄를 진 골퍼는 그때부터 캐디를 바로 보지 못한다. 마주 보지는 못하면서 나중에 캐디피를 지불할 때, 일이만 원 더 얹어주는 것으로 자비(?)를 구한다. 골프장이 정한 캐디피도 적지 않은 금액인데, 거기에 왜 일이만원을 더 얹어주어야 할까. 골퍼가 후덕해서이기보다 대개 그런 짓을 저지른 인물이 앞에서 주도하며 치르는 대가라고 보면 된다.

진정한 골퍼란 정신적으로 정직하고 진지하게 골프를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볼을 치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교묘하게 상대를 기만하고 자신마저 속이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 변하면 법을 유린하듯, 골프나 골프 룰을 잘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야말로 많은 돈과 많은 시간을 들여 그렇게 노력했으나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없는 허탈감을 자기 파괴 ― 즉 자학으로 중화시키려는 심리일까? 골프에 몰두하는 사람 중에 마조히스트(masochism) 경향을 보이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은 골프에서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는 심리가 그 원인으로 보인다.    

소설「보물섬」과「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문호(文豪)) 로버트 L 스티븐슨의 말에서 보다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도 같다. “룰에 따라 플레이하는 자는 평범한 플레이어 이상은 될 수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고귀하고 신성한 마음가짐으로 플레이해야 한다. 경륜이 쌓이면 그게 최상의 플레이법인 것을 깨달을 것이다.”

 

저작권자 © 물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