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로 정복하는 골프(23)

골프가 어려운 것은 정지된 볼을 치기위하여 스윙의 리듬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있다. 스윙이란 것이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극히 부자연스러운 동작이기에 어렵다. 목표물인 골프공이 눈높이에 있으면 좋으련만 자기 키 만큼 낮은 발 앞에 있다. 게다가 정지한 볼이 플레이어에게 무언의 도전을 하기 때문에 치려는 사람의 신경을 곤두세워 불안하게 한다. 요행의 샷은 누구나 경험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지속시킬 방법을 모른다. 골프에 비결이 있다면 자기 능력의 부족함을 되도록 빨리, 정확히 깨닫고 보완을 거듭하는 일 아닐까.

골프를 하는 사람은 누구나 말한다. 「골프에서 심판은 자기 자신이다. 이는 스스로를 신사로 인정, 최고의 품격을 부여하는 것인바, 자신을 속이는 행위를 한다면 스스로 신사의 신분을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그러나 유혹이 득실거리는 페어웨이에서 골퍼의 심리는 언제나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 신사이고 싶은 자신과, 위선으로라도 포장하고 싶은 또 하나의 자신이 서로 심판장 자리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싸움을 벌인다. 당장의 체면 손상을 감수하면서 정직하게 나가느냐, 자신을 속이더라도 일단 체면을 유지한 뒤 나중에 기회가 될 때 이실직고(?)하느냐…. 그런 면에서 골프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게임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치열하다 못해 폭력적이라 할 수 있다. 법률은 악인이 존재한다는 전제아래 만들어 졌지만 골프규칙은 고의로 부정을 범하는 자가 없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졌기에 이를 어기고 속인 경우 ― 어느 스포츠 보다 심하게 경멸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린이 가까워져 핀의 위치가 선명해질수록 골프는 만만해진다. 깃대를 향해 칠 때와 홀 컵을 보고 치는 경우는 비교가 안 되게 욕심이 피어난다. 피칭웨지를 빼어 들고, 핀과의 거리를 재고, 스탠스 확인하고, 공을 보고 또 보고, 두세 번 연습스윙하며, 힘을 빼야지, 핀에 갖다 붙여야지. 그냥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까지 꾼다. 가볍게  볼 밑을 쳐서 부드러운 원을 그리게끔 떠올려, 그린의 둔덕 너머로 날아가 핀 뒤에 사뿐히 떨어졌다가 빽스핀 걸려 뒤로 굴러오는 그림도 그려보고, 아니면 핀 앞에 떨어져 통 통 튀다가 데구르르 구멍을 찾아가는 모습을 머리 속에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욕심만으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몸통을 때려 그린 너머 뒷벙커에 빠트리기도 하고, 너무 약하게 쳐 그린 가에 겨우 올리기도 하는 등 욕심내고 조바심 한만큼 오히려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기 십상이다.

어프로치(approach)의 뜻은 넓게 생각하면 티그라운드와 그린 사이의 모든 샷이다. 그러나 「세컨 샷」을 기본 용어로 사용하게 되니, 그린 주변에서 ― 보통은 5, 60야드 이내 거리에서 ― 그린에 올리려는 샷으로 좁게 사용하게 되었다. 짧은 어프로치일수록 그린을 애무하는 첫 퍼팅과 같아 침착하고 부드럽게 천천히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는 시간에 쫓겨 엉망이 되기 일쑤다. 파5 홀에서 2타 만에 그린 가까이 간 경우는 즐겁고 여유가 있겠지만, 그 외에는 대개 세컨샷을 미스하거나 트러블로 인해 더 치는 샷이기 때문이다. 4명이 1타씩 더치면 30초씩 잡아도 2분이요, 1분씩 소모한다면 4분이다. 그린 가까운 샌드 벙커에 떨어져 털버덕거리는 경우, 또는 일행 중 한 명이라도 그린을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 넘나들어 시간을 많이 뺏기면 일행 모두의 퍼팅까지 바빠져 골프의 재미가 ― 적어도 그 홀에서는 ― 망가지고 만다. 마음이 바빠지면 죄 없는 앞 팀, 뒤 팀이 모두 불운한 만남으로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늦게 치는 자식들이 앞에서 미적미적 김을 빼고, 세상에서 가장 빨리 치는 놈들이 뒤에서 몰아대는 것만 같아지는 것이다. 
어프로치의 요령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힘보다 욕심을 조절해야 한다. 하느님이나 조상 원망 않고 침착하게 최선을 다하자는 자세가 좋다. ▲기적을 바라면 안 된다. 어프로치 에서 볼이 홀인 되는 것은 요행이다. 핀 가까이 붙는 것이 진짜 굿샷이다. ▲정말로 볼만 보아야 한다. 마음이 앞서 서둘러 고개를 들거나 돌리면 토핑(topping)이나 팻샷(Fat shot)이 나와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어프로치 때 순전히 핀까지의 거리만 보고 채를 뽑는다. 사상 두 번째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던 프로골퍼 벤 호건은 거리보다 어떤 샷으로 칠 것인가에 따라 채를 골랐다. 볼 놓인 자리, 바람, 그린의 형상과 위치, 습도 등에 따라 달랐다. 아이언 채를 열고 닫고 충분히 활용하는 기술로 친 것이다. 적어도 1950년 이전까지는 채보다 기술에 의존하는 골프가 주류였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골프클럽을 대여섯 개만 갖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20개 이상 갖고 다니는 사람도 생겨났다. 1936년 브리티쉬 아마추어에서 우승한 로린 리틀은 우드 5개, 아이언 17개, 퍼터 1개, 아이언 왼손 채 1개 등 총 24개를 갖고 플레이했다. 시합이 종료되자 캐디가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세계골프협회는 공식 규정으로서 한 다스(12개)의 클럽에 퍼터를 플러스 하여 13개로 정했는데, 십삼은 악운의 숫자라 하여 드라이버 하나를 더 플러스 개념으로 추가하니 14개가 된 것이다.  

캐디들은 말한다. 스탠스를 보면 대략 핸디를 알 수 있다고. 노련한 골퍼는 발의 위치가 항상 같아서 구질도 일정하지만 일반적인 아마추어는 설 때마다 발의 간격과 방향이 달라지니 볼도 제멋대로 날라간다는 것이다.
골프를 시작할 때 ― 남자의 경우는 대부분 ― 독학하는 사람이 많다. 처음 한두 달 레슨을 받다보면 도대체 「조언과 같은 말 몇 마디」에 왜 그렇게 비싼 레슨비를 내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필자 소견에 드라이브나 퍼팅은 혼자 연습해도 괜찮다고 본다. 설혹 스윙이 나빠도 잘 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아이언 스윙 ― 특히 어프로치만큼은 레슨비를 들여 배울 필요가 있다. 유머는 기량이 능숙할 때의 여유에서 나온다. 잘 훈련된 유머는 그린(여인 심볼)의 경계심을 풀게 하고 친밀감을 주는데 큰 효과를 올릴 수 있다. 「유머 어프로치」를 광고용어가 아닌 새로운 골프 용어로 등재하는 것은 어떨까?

저작권자 © 물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