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로 정복하는 골프 (22)

페어웨이(Fair way) ―.
오늘날에는 '페어웨이(Fair way)'가 아예 골프용어로 자리를 굳히다시피 했지만 원래는 항해용어로 '암초 사이의 (안전한) 항로'라는 뜻이다. 항해용어를 골프에 접목시킨 이유는 그것이 트러블 샷 때문에 쌓이는 스트레스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페어웨이에서 수없이 만나게 되는 게 「트러블 샷」이다. 자연 지형을 살린 코스일수록 페어웨이에 평지란 드물다. 볼은 어떤 경우라도 오르막, 내리막 혹은 좌우로 경사진 곳에 있게 마련이다. 평지로 보여도 결코 평지가 아니다. 경사가 완만하냐 가파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볼의 위치가 발 보다 높은 발끝 오르막일 수도 있고 반대로 발끝 내리막 라이일 수도 있다. 움푹 파인 곳이나 얕지만 복록 튀어나온 곳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백상어로 불리는 그레그 노먼은 페어웨이 샷 ― 특히 트러블 샷 ― 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록 볼을 원하는 지점까지 날려보내지 못할지라도 균형 잡힌 스윙으로 그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발끝 오르막일 경우는 짧은 클럽을 선택하거나 그립을 짧게 쥐고 스윙해야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다. 발끝 내리막은 그 반대여야 한다. 무엇보다 하체를 단단히 고정시켜 스윙을 잘 버텨주는 것이 필요하다. 비스듬한 곳에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스윙을 하여 원하는 방향과 거리로 공을 보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방향과 거리를 함께 살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를 버려야할 때는 방향을 살려야 한다.

볼이 벙커나 해저드, 러프에 빠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암초에 걸린 배가 순항할 수는 없다. 일단 암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너도나도 객기를 부린다. 짧은 클럽으로 탈출부터 하고 봐야 하는 데 오히려 한두 클럽 긴 것을 잡고 멋지게 볼을 사뿐히 띄워 그린에 올리고자 한다. 열 번 휘둘러 한 번 성공하기 어려운 시도를 미련하게도 밀어붙이는 것이다. 결과는 십중팔구 후회이다. 그리고 그 후회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만일 그것만 그렇게 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병(病)이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좀처럼 이 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벙커에서 공연히 객기 부리다 헤매지만 않았더라면…’
‘어프로치 때 조금만 신중했더라면…’
‘러프에서 멋진 샷 보여주려다가 로스트만 없었다면…’
그랬으면 80대를 마크하는 건데… 그랬으면 신기록을 세우는 건데… 그랬으면 보기로 막았을 건데… 다.
이와 같은 반성과 회한이 끝없이 이어지며 병은 더욱 깊어진다. 부질없는 짓이요 병 아닌 병에 시달리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골프라는 불가사의한 게임에 발을 들여놓고 나면 너도나도 라운드 후 아쉬워하고 억울해 하는데, 답은 뻔하다. 「만일 이랬더라면~」은 자기 핸디캡 속에 들어있는 것이지 특별히 무엇을 잘못해서거나 우연히, 뜻밖에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받아들여야한다. 그 병에서 해방되고 졸업하는 게 골프를 진정 즐기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알면서도 그렇게 못하는 게 인간의 한계 아닐까? 받아들이기는커녕 핑계를 만든다. 골프에 입문한 뒤 제일 먼저 느는 것이 바로 이 핑계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볼을 잘 치려는 노력보다 그럴 듯한 핑계를 대는 데 급급해 진다. 롱 아이언을 제대로 못 치는 골퍼는 많지만 핑계를 대지 않는 골퍼는 없을 정도다. 그래서 골프에서 핑계를 빼낸다면 녹슨 클럽과 잡초 무성한 페어웨이만 남을 것이라는 조크도 있다.

이에 연유해서 골프는 108개의 핑계로 성립되는 게임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18홀을 돌면서 평균 2타씩을 더 치면 (더블보기) 108타가 된다는 데서 힌트가 나온 것이다. 108은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108번뇌(百八煩惱)를 연상하게 하는데 살피고 음미할수록 절묘한 상통이 아닐 수 없다.
108번뇌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중생의 눈 ·귀 ·코 ·혀 ·몸 ·마음 등 6개의 감각기관이 감관의 대상을 접할 때, 저마다 좋다(好) 나쁘다(惡) 그저 그렇다(平等)는 세 가지가 서로 같지 않아서 18가지 번뇌를 일으키고, 또 괴로움(苦) 즐거움(樂) 어느 쪽도 아닌(捨) 것과 관련지어 18가지 번뇌를 갖게 된다. 이 둘을 합한 36가지 번뇌가 다시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갖기 때문에 36가지 번뇌에 3배를 하여 108 번뇌가 되는 것인데, 과연 골프의 번뇌와 꼭 같지 않은가.

불교에서는 108개의 나무환자를 꿰어 만든 수주(數珠:염주)를 만들어 돌리면서 삼보(三寶)를 생각하면 108 번뇌를 없애고 수승(隨乘)한 과(果)를 얻는다고 하여 널리 신행(信行)되고 있다. 골프의 108 번뇌를 없애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작게 만든 골프공을 108개 염주처럼 꿰어 돌리면서 파만 생각하면 이븐에 이를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 역시 인간의 번뇌를 108종으로 세분해 본 것일 뿐 그 근원은 하나, 즉 본래의 자기인 일심(一心)을 잃는 데서 오는 것이므로, 일심을 잃지 않도록 하고, 또 잃더라도 빨리 되찾는 것이 백팔번뇌를 끊는 길이다.

역설법으로 마인드 콘트롤을 하는 것은 어떨까.
육순에 클럽을 잡기 시작한 노골퍼가 마침 한 조가 된 젊은이에게 말했다.
“내가 자네보다 골프를 더 즐기는 셈이지”
젊은이는 왜 그렇지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노 골퍼 왈
“골프는 볼을 치는 재미로 하는 거 아닌가. 자네는 1라운드에 90번밖에 안 치지만 나는 108번이나 친단 말이야. 그러니 내가 더 즐기는 셈이지. 하하하.”
하면서 해맑게 웃었다.
골프는 잘 쳐야만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룰을 지키는 진지함만 있으면 잘못 쳐도 재미있기에 매력있는 운동인 것이다. 희망하는 샷과 현실의 샷을 구별하는 슬기를 지닐 때 골프는 더욱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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