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사슬, 재난 앞에 너무 쉽게 붕괴되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우리나라가 자연재난으로 입은 재산피해액은 총 21조 2천억 원, 연평균 1조 6,500억 원에 이른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9년 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자연재난 피해액은 총 3조 3,084억 원이다.
유의해서 봐야 할 것은 태풍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난으로 인한 피해의 정도나 발생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드러난 피해 사례만 보면 지진보다는 태풍 같은 자연재난이 물류 인프라에는 더 위협적이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1984년 태풍 ‘준’으로 인해 지진과 유사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때 정부에서 산정한 피해액은 2,502억 원이었다. 그런데 2003년 태풍 ‘매미’때에는 피해액이 4조 2,225억 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부산 신감만부두 6기의 크레인 붕괴, 부산항 신항 호안, 수로, 잔교 방파제, 부두 등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태풍 매미의 사례는 우리나라도 태풍 등 자연재난에 대한 심도 있는 관리가 필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대형지진 위험 앞에 놓인 한반도 물류인프라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지진으로 인한 대규모 피해 사례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지만, 전문가들은 지진이 태풍보다 물류 인프라에 직접 영향을 미칠수 있는 재난이라는 점에서 더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한반도 남동부와 경주, 포항 등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지진들이 연달아 발생한 후 지진재해에 대한 경각심이 높어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 2016년, 경주, 울산, 부산, 대구 등을 포함한 영남 지역에서 굉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리는 강한 지진동이 감지되었다. 이 지역은 원자력 시설과 석유화학단지, 항만시설 등이 밀집돼 있는 곳이다. 2017년 포항에서도 진도 5.4의 대형지진이 발생하여 항만시설 일부가 파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지질학계에서는 최근의 이런 상황과 지진역사 자료를 근거로 포항-경주-울산 지역 등 우리나라 남동부가 지진에 가장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남동부에는 규모 7.0에 가까운 지진이 미래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대규모 지진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비책을 수립하는 것이 향후 중요한 국가 주요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형지진의 발생은 지역에 있는 모든 터미널에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항만이 기능을 상실했던 일본 고베항 대지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베의 사례에서 보듯 항만지진은 필연적으로 항만인프라의 파괴, 원재료 및 부품의 공급 차질로 인한 생산 중단 등으로 국민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 항만의 경우 그 기능을 이행할 대체수단으로 비슷한 수준의 인프라를 가진 다른 항만이 없으면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화산 때문에 물류대란 겪은 유럽과 지진으로 무너진 일본항만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와 자연재난은 글로벌 공급사슬 인프라 및 네트워크 붕괴를 불러온다. 2011년 5월,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이 때문에 유럽 지역은 항공 물류대란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자연재난 앞에 글로벌 공급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가까운 일본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의 항만기능은 마비됐고, 공급사슬이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 내 글로벌 상장사의 영업이익이 33%나 감소했다. 태국에서도 대홍수가 발생한 적이 있는데 피해 후 GDP 성장률을 4.1%에서 1.5%로 하향 수정하는 등 태국 국가 경제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자연재난으로 인해 항만 시설이 손상·파괴되면 막대한 1차 피해(시설, 장비)에 이어 2차 피해(물류대란)가 발생한다. 일본의 경우 고베항 지진 이후 항만기능은 2년 만에 회복했으나 화물처리량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본 및 아이슬란드의 경우에서 보듯이 만약 지진으로 인해 우리 부산항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면 물리적 손실뿐만 아니라 물동량 이탈에 따른 손실이 더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부산항의 지진발생 시나리오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수출입 화물의 99%를 항만에서 취급하고 있어 항만의 기능이 마비되는 경우 막대한 피해가 불기피하다. 이러한 피해는 단순히 항만의 기능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화물의 수출입 마비로 인해 국가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2차 피해가 더 위험하다.
국내에서 건설된 컨테이너터미널은 2005년 이후 진도 6.0 수준의 내진설계가 적용되었으나, 이전 터미널은 규정이 적용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나라 항만도 항만물류 공급사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리스크인 지진에 대비하는 방안의 수립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장기화 시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 0.4%p 감소 예상
전 세계는 지금 자연재해·재난보다 더 심각한 신종 재난 ‘코로나19’로 인해 극심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해운물류부문은 글로벌 물류/공급망의 붕괴로 인해 물류체계의 혼란과 함께 운송 수요 감소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올해 2월 발행한 동향분석 자료 ‘코로나19 사태와 해운물류산업 대응방안’에서 컨테이너선 부문에 대한 영향 예측 결과, 이번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이 0.3~0.4%p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세계 GDP 0.2~0.3%p 하락에 따른 시나리오 분석을 토대로 한 것이며, 제조업 수출량이 많은 중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그 영향도는 더 커질 수 있다고 KMI는 설명했다.
글로벌 포워더들 역시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KMI는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는 경우 계약기간을 맞추기 위해 일부화물을 해운에서 항공으로 운송수단을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로 인한 운임비 상승 추가 요금 부과로 인해 포워더, 물류기업, 해운사 등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 지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포워더들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중국향 항공, 해운, 철도 운송 지연이 지속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 물류기업 역시 운임비 상승, 통관검역 강화 등으로 운영을 재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컨테이너 선사 및 물류업계에서도 단기 물동량 감소, 운임하락, 중간 물류서비스 원가 상승 등으로 수익 현금 흐름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물동량, 코로나19 재난 앞에 10년 만에 최대 폭 감소
영국의 해운 컨설팅 회사 Drewryl가 지난 6월 말에 발표한 분기별 컨테이너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물동량이 2000년대 후반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2분기에 코로나19 사태가 정점에 달하며 올해 상반기 컨테이너 처리량 전망치는 16%로 크게 하락하였다. 하반기에도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Drewry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5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을 3.5%로 낮은 편으로 예측했다. 추가 수축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2021년에는 2019년 수준으로의 회복을 전망하고 있으며, 2024년까지는 점진적으로 수요-공급 재균형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Drewry는 코로나19의 상황이 지속되고, 물동량이 2025년까지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시나리오에 따른 분석 결과도 발표했다. 이 경우 컨테이너 물동량의 2019~2024년 세계 CAGR 처리율은 -4.4%에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부정적 전망은 이뿐만 아니다. 글로벌 조사기관인 Markets and Markets가 최근 발표한 ‘COVID-19가 물류 및 공급망 산업시장에 미치는 영향’(COVID-19 Impact on Logistics & Supply Chain Industry Market)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세계 물류시장 규모는 2020년 27억3,400만 달러에서 2021년 32억1,500만 달러로 전망됐다. 이와 같은 2021년 추정치는 코로나19 이전의 추정치보다 약 10~15% 이상 감소한 것이다.
국제물류주선업 시장도 마이너스 성장 예상
국제물류주선업 시장 역시 코로나19 여파에 따라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됐다. 영국의 물류 컨설팅 업체 Transport Intelligence(TI)는 3월을 기준으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향후 추이를 2가지 시나리오로 가정했다. 전망 결과, 시나리오 1(현재의 상황 지속)에 따라 상황이 전개될 경우 –2%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시나리오 2(상황 악화)에 따라 팬데믹 상황이 악화되어 세계 공중보건 시스템으로 통제가 불가능 해질 경우 최대 –7.5%의 성장을 예상했다.
지역별로는 아프리카(시나리오 1:0.2%, 시나리오 2: -4.2%), 아시아(시나리오 1: -1.0%, 시나리오 2: -6.0%) 지역이 북미(시나리오 1: -4.6%, 시나리오 2: -10.8%) 지역에 비해 마이너스 성장 폭이 다소 작을 것으로 예상됐다.
해운, 항공 물류 주선업 시장 모두 비슷한 수치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항공물류주선업 시장은 두 시나리오별로 각각 –2.8%, -7.7% 성장이 예상되고, 해운물류주선업 시장도 같은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각각 –1.1%, -7.3%의 성장이 예상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 일부의 가동 중단을 겪은 기업이 적지 않다. 그동안 특정 지역에 편중돼 운영되던 공급망의 약점이 이번 사태로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라 공급망의 불확실성과 빠른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공급망 재설계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또한, 공급사슬 위험관리 전략 차원에서 물류행정조직의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재난 사고의 예방과 대응에는 상당한 시간과 재원이 소요된다. 단기적 시각에서 접근하기보다는, 국민, 기업, 전문가, 정책담당자, 언론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장기적인, 그러나 즉각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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