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의 유라시아 물류이야기9

중앙아시아에는 ‘…스탄’이라는 이름을 쓰는 5개의 국가 가 있는데, 우즈베키스탄부터 시계 방향으로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이 있다. 수도는 각각 타슈켄트와 아스타나(알마티), 비슈케크, 두샨베, 아쉬가바트다.

19세기 후반 러시아가 남진하면서 오스만 투르크의 세력권이었던 중앙아시아를 차지했다. 당시에는 ‘부하라, 히바, 코칸트’라는 3개의 칸국이 있었는데, 모두 러시아에게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1917년 벌어진 혁명으로 러시아가 혼란 한 틈을 타 중앙아시아인들은 ‘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세웠다. ‘투르크의 땅’이라는 뜻이다.

소련은 투르키스탄의 이슬람, 투르크 문화를 경계했다. 그래서 투크키스탄을 민족별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나누었지만, 우즈베키스탄이 상대적으로 컸다. 그래서 이를 다시 쪼개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까지 5개 공화국으로 나누었다.

사방으로 막혀 있는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는 중국, 몽골과 이란, 터키 사이에 위치함으로써 실크로드 시대의 교역로이자 물류의 허브 지역이었다.

실크로드의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의 중앙에 있다. 실크로드라는 이름만 들으면 사방이 잘 뚫려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몽골에서 이란으로 가는 길은 산맥 북쪽 길을 따라 말과 낙타를 가지고 지나는 외길이다. 몽골이나 중국인들도 이란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견고한 성이나 큰 도시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산맥을 따라 만들어진 물기 있는 초원을 가다 보면 촌락이 있었고 그 길이 실크로드가 되었을 것이다. 즉, 실크로드가 현대에 와서는 사방이 막혀있는 물류의 오지로 변화되었다.

중앙아시아의 중심을 만약 타슈켄트라고 가정한다면 한 번 사방을 살펴보자.

-남으로는 히말리야 산맥이 버티고 있어 출입구가 없다. 산봉우리를 넘지 않고 골짜기를 지난다고 해도 치안이 가장 불안한 아프가니스탄이다. 때문에 그나마 치안이 나은 이란의 테헤란을 경유하면 페르시아만의 반다르아바스항구가 놓여있다. 무려 2,500km이지만 가장 가까운 바다다.
-북으로는 시베리아 황무지이고 러시아가 있다. 모스크바까지 3,400km나 될 정도로 멀다. 모스크바 인근을 거쳐 발트해 연안의 페테르부르크항구나 리가항구까지 가려면 4,000km가 넘고, 시베리아를 거쳐서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항구까지 가려면 8,000km가 넘는다.
-동으로는 산맥과 초원이 이어져 중국 서부의 신장 위구르와 맞닿는다. 중경이나 서안 등 중국 내륙까지만 해도 3,000km가 넘는데, 황해까지 닿으려면 4,500km나 된다.
-서쪽으로는 3,500km 정도 떨어진 흑해가 있다. 그런데 바다는 바다인데 외해가 아니라 내해인 카스피해가 중간에 떡하니 막아서고 있다. 호수같이 생긴 바다가 무려 한반도의 2배에 달할 정도로 크다. 카스피해를 건너 흑해에 연결되어야 지중해를 거쳐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다. 지름길인 카스피해를 건너지 않으려면 카스피해의 북쪽이나 남쪽으로 멀리 돌아서 흑해로 가야 한다.

중앙아시아는 이처럼 동서남북 사방이 막혀있다. 5개의 중앙아시아 국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최소한 1개에서 5개의 국경을 거쳐야 바다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북으로만 막혀있지, 동서남이 모두 뚫려 있고, 국경 없이 바로 바다로 나아갈 수 있으니, 중앙아시아와 비교하면 해상물류의 천국이다.

복합운송을 해야만 하는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와 중국,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인근 국가나 유럽, 중국 등 육지로 연결 된 지역으로는 트럭이나 철도를 통해 육상운송을 하면 된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국가들로 화물을 보내기 위해 해상운송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당히 복잡해진다. 복합운송을 해야 한다.

복합운송은 2개 이상의 다른 운송 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뜻한다. 연태에서 인천까지 페리선을 이용한 뒤 비행기로 미국 시카고까지 운송한다면 해상과 항공을 혼합한 것이다. 대부분의 국제운송에는 복합운송의 기회가 별로 없다. 그냥 해상이나 항공운송으로 통관을 거친 뒤 내륙에서 육상운송(국내운송)을 진행하면 된다.

중앙아시아는 트럭과 선박이 혼합된 복합운송을 해야 한다. 중앙아시아에서 해상운송을 하려면 트럭으로 러시아나 이란의 항구까지 화물을 보낸 뒤 선박에 실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무려 3,000km의 장거리 국제 운송을 해야 하는데다 트럭은 컨테이너를 싣고 갔다가 되돌아와 반납해야 하므로 왕복운임을 요구하는 일이 통상적이기 때문에 운송료가 비싸다. 그래서 대부분 컨테이너 트럭이 아니라 일반 텐트트럭으로 항구까지 보낸다. 그리고 항구에서 컨테이너로 재작업하면서 서류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중앙아시아는 철도를 통한 복합운송이 발달되어 있다. 철도를 통한 복합운송을 해야 하고, 운송 거리는 긴 반면에 물동량은 많지 않아 물류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부산과 상해에서 헝가리나 폴란드, 터키 내륙, 심지어 미국 텍사스나 브라질의 아마존, 러시아의 시베리아 내륙까지 가더라도 40피트 컨테이너 당 4,000달러를 넘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타슈켄트나 알마티 등 대도시로 보내려면 40피트 컨테이너 당 통상 5,000달러가 넘고 비쉬케크과 두샨베, 사마르칸트 등의 중소도시로 보내려면 6,000달러는 가뿐히 넘는다.

그렇다면 중앙아시아의 수출자 입장에서, 어떤 루트로 수출해야 하는가?

남으로는 이란 횡단철도, 북으로는 러시아(시베리아) 횡단철도, 동으로는 중국 횡단철도, 서쪽으로는 카스피해 횡단 레일페리다. 카스피해 레일페리는 해상 운송이지만, 철도 운송의 연결과정에 부속된 것으로 본다.
즉, 짧게는 3,000km, 길게는 9,000km의 장거리 철도를 사용하여 이란의 반다르아바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페테르부르크, 노보로시스크, 중국의 청도나 연운강, 조지아의 포티항구에 닿는다.

아시다시피 중앙아시아, 러시아, 조지아는 광궤인 반면에 이란과 중국은 표준궤다. 따라서 이란이나 중국 철도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국경에서 궤를 변경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즉,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이란 또는 그 인근 국가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중국-이란 루트를 사용해야 하지만, 경유 루트로는 중국이나 이란 루트보다는 러시아나 카스피해 루트를사용한다.

중앙아시아, 물류가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다. 하지만 물류비가 높은 만큼 부가가치가 높고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내륙 운송이 해상 운송보다 더 중요하므로 글로벌 대형 선사의 파워가 그리 세지 않다. 따라서 중앙아시아의 물류업체들은 단순 포워더로서가 아니라 복합운송주선업체로서 물류의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다. 중앙아시아는 복합운송의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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