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재앙’ 되지 않으려면 사회적 합의 필요

1960년, 세계적 컴퓨터 회사인 IBM을 발칵 뒤집어 놓는 해프닝 하나가 있었다. IBM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IBM 컴퓨터를 사용하는 고객사의 관리급 임직원들이 일제히 거센 항의를 한 것이다. 인공지능에게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들은 “문서를 작성하고 청구서를 보내는 하급 직원들의 업무를 컴퓨터가 대체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컴퓨터가 언젠가는 관리자인 우리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IBM 컴퓨터 구입을 보이콧하기에 이르렀다. 이 소동은 IBM 경영진이 직접 나서 해명과 설득을 해 가라앉았지만 첨단 기술이 노동문제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된다.
지난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WEF)은 ‘제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열린 다보스(Davos) 포럼에서 인공지능과 로봇, 생명과학 등의 기술 발전으로 2020년까지 5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미래일자리보고서(Future of Jobs)’를 공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IBM의 소동으로부터 50여 년이 지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로봇이란 단어는 체코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Karel Capek이 1921년 발표한 ‘로섬의 만능로봇’이라는 희곡작품에서다.
로봇은 강제적인 노동, 고되고 지루한 일, 노예상태를 의미하는 체코어 robata(강제노동, 일하다)와 robotik(노동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처음에는 ‘일할 수 있는 능력은 있어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없는 인간을 닮은 기계’를 뜻하던 로봇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계, 전기, 전자 등의 기술이 복합적으로 적용되어 인간을 대신하여 역할을 수행해주는 기계’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봇’이라는 단어는 시작부터 이미 ‘일자리 문제’를 예고한 셈이다.

‘단순반복 일자리 로봇으로 대체’ 우려가 현실로
로봇과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이 물류산업에서 단순반복적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란 것은 단순한 염려가 아니라 확실한 우려에 가깝다.

2016년 3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4차 산업혁명 방향과 인식’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반증한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가장 먼저 없어질 일자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
문에 기업인들은 제조업공장 근무자(44.8%, 이하 복수 응답)를 가장 많이 꼽았고 그 다음으로 물류창고 노동자(35.7%)를 들었다.
택배서비스 노동자가 없어질 것이란 응답률도 15.5%나 됐다.
같은 해 3월 말경 한국고용정보원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주요 직업 400여개 가운데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등을 활용한 자동화가 이뤄질 경우 직무 대체 확률이 높은 직업을 분석한 결과, 택배원이 대체 가능 순위 10위로 조사됐다. 이 조사에서 상위 순위에 오른 직업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단순 반복적이고 정교함이 떨어지는 동작을 하거나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은 특징을 보였다.
우리나라 ICT 업계 종사자들 역시 물류/화물 운반 분야에 로봇을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올해 7월 중 서비스 로봇에 대해 우리나라 ICT 업계 종사자들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전문/상업용 서비스 로봇에서 가장 희망하는 적용 분야로 ‘재해/화재 현장(56%)’을 꼽았고 물류/화물 운반는 31%, 음식/택배 배달 분야는 5%로 나타났다.
국내 전문 물류기업들은 물류비용 절감 및 효율향상을 위해 기존 인프라에 변화를 주지 않거나 최소화하면서, 24시간 작업이 가능한 물류로봇의 단계적 도입을 장기적 관점에서 계획하고 있다. 물류·유통·화주 기업의 입장에선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대응 및 물류센터의 효율 향상을 위해 24시간 무인작업이 가능한 물류 로봇의 도입이 요구되고 있지만 사회·노동 관점에서는 ‘일자리 문제’와 관련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류 현장 업무가 인공지능 또는 로봇으로 대체가 예상되는 것은 그 업무들이 대부분 절차화 되기 쉬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단순 반복적인 과업(Task) 중심으로 대체되는 것일 뿐 여전히 중요한 의사결정과 감성에 기초한 직무는 인간이 맡게될 것이므로 막연히 일자리의 소멸을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여 담당하게 될 직무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를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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