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로 촉발된 중국의 ‘물류 보복’ 실태 점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를 둘러싼 우리나라와 중국의 갈등이 격해지고 있다.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후 중국의 보복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추세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기업은 롯데다. 사드 배치에 필요한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롯데는 중국 내에서 제대로 사업을 펼치지 못한 채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유무형의 가치를 창출하던 한류열풍도 한풀 꺾였고, 지갑을 열었던 중국인 여행객도 줄어들면서 관광업계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다.

급기야 최근 중국의 사드 보복의 화살이 대한민국 물류업계로 쏟아졌다. 중국을 목적지로 하는 화물운송서비스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는 업체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향 항공운송·해상운송가 차질을 빚으면서 우리나라의 중국물류시장 공략이 크게 위축됐다.

아직까지 중국 정부는 ‘사드로 인한 보복은 없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황상으로는 보복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송한 화물은 유독 까다롭게 취급하면서 자국 시장에 들여보내지 않으려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사드 보복의 대상이 한류와 관광에서 물류로 옮겨간 이유는 무역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상대국은 미국이었으나 최근에는 중국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국가경제에서 무역을 중시하는 우리나라를 압박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역의 길을 막는 것, 품목마다 관세를 올리고 규제를 만드는 것보다 물류에 차질을 빚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보복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던 정부는 최근에서야 중국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내놓는데 그쳤다. 고위급 채널을 통해 보복조치가 부당하다는 점을 알리겠다는데, 보복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중국 정부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 차원의 대응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물류업계 스스로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뚜렷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물류보복 실태를 취재했다.

중국 항공·해상 수출물류 총체적 난국
물류신문의 취재 결과 3월 20일 현재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화물의 상당수는 제대로 목적지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월에 접어들면서 운송 지연이 아니라 사실상 네트워크가 막힌 것과 다름없다고 말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항공화물의 경우 특송업계의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송업계는 배송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최근 물량이 평소보다 50~70% 가량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특송업체 관계자는 “제네럴 카고(일반 특송화물)로 나가는 물량 중에서 중국업체들이 꼭 필요로 하는 품목들은 그나마 통관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생산된 전자부품이나 섬유류 등의 부자재, 샘플들은 그나마 중국으로 운송이 가능하다. 또 국내 대기업들이나 인지도가 있는 업체들의 부품, 자재들도 비교적 차질이 적은 푼목”이라면서 “중국으로 향하는 특송 화물들 중에는 중소기업들의 샘플류들도 상당히 많은데, 중국 현지에서도 구할 수 있는 비슷한 제품들은 쉽게 들여보내지 않는 분위기다. 때문에 특송업체들의 물동량이 크게 줄었고, 운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송업체들이 이용하는 대형 화물운송사(상위 운송사)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네트워크가 비교적 잘 꾸려진 업체들은 그나마 좀 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나마도 3월에 접어들면서 유동적인 상황이 됐다.

해상화물도 차질을 빚기는 마찬가지다. 해운업계에서는 중국의 영향이 가장 큰 근해선사와 카페리선사들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운송경로와 마찬가지로 물동량이 감소 추세라는 것.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을 오가는 카페리선사들은 최근 중국인 여객이 감소하는 추세여서 화물 물동량이 줄어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카페리선을 이용하는 여객 중에는 중소 무역상들이 많아 물동량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최근 이용률이 20~30% 줄어들어 물량 감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선사들은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한 업체 관계자는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특송이나 포워더와 달리 중국에 취항한 국내 선사는 몇 군데 되지 않는다. 중국쪽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 불만을 드러낼 수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크루즈선도 타격을 입고 있다. 중국발 크루즈선의 국내 기항이 잇따라 취소되면서 유치를 위해 공을 들였던 항만공사들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특히 제주도는 관광객 감소로 도내 물동량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中 전문 포워더 직격탄…소규모 업체 도산 우려
포워더(화물주선업체) 업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 전문서비스’를 표방해왔던 포워더들은 이번 사드보복에 직격탄을 맞았다.

한 포워더 업체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시장에서 창출되는 물동량이 많다보니 중국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 많았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는 전체 매출액의 50% 이상을 중국시장에서 창출할 정도로 자원을 집중했다는 점이다. 중국 전문 포워더들의 피해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중견 이상 규모의 포워더들은 물류 네트워크 다변화와 다양한 고객사들을 보유해 타격이 덜한 편이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업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전문 포워더 중에서도 규모가 작고 영세한 업체들은 당장 이번달 대금 지급도 어렵다고 들었다. 일부에서는 직원들 급여도 주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라며 “규모가 있는 업체면 모를까, 작은 포워더들은 대부분 단기간에 사업 포트폴리오(주요 운송지역)를 바꾸기 어렵다. 이 때문에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도산하는 업체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라고 말했다.

탈출구 없는 물류 보복의 근원, 통관 지연
국내 물류업체와 달리 외국계 물류업체들의 중국운송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 업체 관계자는 “외국계 물류업체에 불이익을 줄 경우 해당 국가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사드 보복은 철저하게 국내 업체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라면서도 “다만 외국계 업체들이 큰 반사이익을 얻고 있진 않다. 물량이 소폭 늘어난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계열 혹은 물류업체들도 자유로운 입장은 아니다. 국내 업체보다는 비교적 덜한 편이지만, 최근 한 중국계 물류업체는 고객사와 협력업체들에게 ‘한국에서 중국으로 발송되는 화물은 배송이 늦어질 수 있다’는 공지를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물류업체들은 비교적 나은 상황이다. 중국 물량 비중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튼튼한 네트워크를 구축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큰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중국 파트너사와 끈끈한 협력 관계를 구축한 물류업체들도 선방하고 있다. 이들은 이전보다 다소 지연되는 것을 빼면 중국으로 화물을 운송하는데 무리가 없다. 때문에 최근 화주업체들의 운송 관련 문의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드 보복에 따른 피해가 중소물류업체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중국의 물류보복의 핵심은 통관이다. 통관이 지연되거나 규정을 이유로 거부되는 일이 크게 늘다보니 하늘길이든 바닷길이든 운송에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업다. 이전에도 통관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세관과 검역국의 절차가 눈에 띄게 까다로워졌다. 규정을 이유로 이전에는 요구하지 않았던 서류들을 달라고 하거나 가끔하던 전수조사도 지금은 100% 가깝게 진행한다. 심지어 통관이 지연되는 이유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한국 물건은 받지 않겠다는 현지 통관사도 있다”고 말했다.

“사드는 결국 정치 문제, 정부 외교력 발휘해야”
피해가 누적되면서 업계는 대응방안 찾기에 고심하고 있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다른 국가를 경유하는 방법으로 통관하고 있으나, 이 경우 운송거리가 늘어나 비용 부담이 커지고, 배송시간도 늘어난다. 일부 물류업체들은 고객사와 관계를 고려해 울며겨자먹기로 운송비를 부담하거나, 비용을 올려 소폭의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절차가 복잡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처리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꺼리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원활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사드 보복이 물류시장에 언제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장기화될 것이라는 주장과 조만간 완화될 것이라는 논리로 갈리는 분위기다.

한 전문가는 “중국 입장에서 우리나라는 4위 무역상대국이며, 수입량 기준으로는 1위 국가다. 중국 정부도 우리나라와 무역, 물류에 차질을 빚으면 자신들에게도 득될 것이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장기화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는 다르다.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장기화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업체들은 정부 기관에서 적극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다. 사드 보복은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외교로 풀어나갈 문제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부 기관들은 현황 파악 이외에는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중국은 이번 기회에 불법과 편법으로 화물을 통관했던 관행을 정리하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부터 따이공(보따리상)이나 그레이(Grey) 채널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그쪽 입장에서는 이번 기회에 그레이 화물을 정리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라면서도 “이 경우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만약 사드 배치가 가시화되면 보복은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건실한 중소물류업체들은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규모가 작거나 영세한 업체는 사정이 더 박하다. 한 두달 더 지속되면 사라질 업체들도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에서는 사드 보복이 지속되면 영세 업체들의 도산이 이어지면서 미수금에 따른 2차 피해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업체들이 중국세관이나 통관사를 통해 의견을 보냈지만, 풀리지 않았다. 결국 정치적인 문제에서 촉발된 문제 아닌가. 4월 미·중 정상회담만 바라봐야할 처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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