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진입 때 불공정 경쟁 경험한 택배업계의 반발은 당연

두 개 이상의 공공기관이 시장에 진입해 민간기업과 경합하는 시장은 얼마나 될까. 또 민간 기업이 독과점 형태로 운영되며 시장을 어지럽히지 않는데 공공기관이 시장에 뛰어들어 민간기업과 경합하는 사례도 얼마나 될까.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공공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공공기관의 시장 진입이 필요한 때도 많다. 민간이 투자하기에 초기비용이 너무 많이 들거나 위험 부담이 큰 사업, 또는 민간에 맡기는 경우 독점의 횡포가 우려되는 사업 등과 같이 시장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한 우려가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시장 환경이 변하고 민간 기업들이 충분히 시장의 논리에 의해 사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에 뛰어든 공기업의 독점적인 지위는 하나의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배시장엔 또 한 번 공공기관과의 치열한 혈투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한 번의 쓰린 경험을 맞본 택배업체들에게 또 한 번의 아픔이 예고된 것이다.
택배시장은 순수하게 민간 기업이 만들어온 곳으로, 특정 기업이 과도한 수익을 창출하거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시장도 아니다.
스스로의 희생과 투자로 택배를 국민 생활서비스로 자리매김 시켜온 택배업체들에게 정부가 시련을 주는 꼴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택배’에 무임승차한 공기업, 우체국

지난 2001년 우체국이 택배시장에 뛰어들며 시장엔 큰 변화가 찾아왔다.
민간 기업이 10년 동안 키워온 시장에 우체국택배가 말 그대로 무임승차한 형태로 진입하면서 경쟁이 가열, 택배단가가 반토막 나며 경영위기에 처한 민간업체들이 속출하는 등 시장이 크게 재편된 것이다.
민간 택배업체들은 농협이 시장에 진입할 경우 과거 우체국이 시장에 진입했을 때와 같이 시장이 혼탁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년 넘게 수천억 원에 달하는 과감한 투자와 적자를 감수하는 희생으로 택배서비스를 국민 생활 서비스로 자리매김 시켜온 민간 택배업체들로서는 힘이 빠지는 얘기일 수밖에 없다.
20년 간 보다 나은 서비스를 위해 투자의 투자를 반복하며 제대로 수익창출 한번 못해본 민간택배업체들로서는 막대한 자금과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시장 진입 소식이 거북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

우체국택배 진입 후 불공정 경쟁을 경험한 민간택배업체들로서는 더욱 농협의 진입이 부담스럽기만 한 상황이다.
우체국택배의 경우 미래부 소속으로 우편특별법의 적용을 받음으로서 화물차 증차 금지 같은 정부의 조치가 적용되지 않아 불공정 경쟁이 야기된 바 있다.
지난 2010년 전국경제인연합회은 ‘택배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제언’ 보고서를 통해
우체국택배는 ‘우편법’과 관용차량규정의 특례적용으로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약 2,700대의 증차를 허용 받은 반면 민간 택배업체들은 2004년 이후 전혀 증차하지 못해 편법을 통한 차량확보에 의존해왔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우체국은 2002년부터 정부예산 약 1조 2,000억 원을 들여 전국에 25개 우편집중국을 설치하는 등 택배사업부문 자체 자금은 한 푼 안들이고 택배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우편법 제12조를 이용해 우편 및 택배물 구분 작업에 공익근무요원을 투입함으로써 불공정한 경쟁구조를 만들었다고 비난받은바 있다.

뿐만 아니다. 우편법 제5조의 ‘우편운송원의 통행권 보장’을 들어 택배차량의 통행과 주정차시 편의를 제공받은 반면 민간 택배사들은 일부 지자체의 허용권역과 시간대에만 일시 주정차가 허용되는 등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논란이 사그라진 것은 불과 1년 전으로, 정부가 민간기업에게 택배증차를 허용하면서 부터다. 그런데 다시 또 업체들은 불공정 경쟁과 관련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의 규제를 받는 민간택배업체들과 달리 농협의 경우 협동조합법에 의한 각종 세제감면, 규제 예외적용 혜택, 보조금 지원 등에서 불합리한 특혜를 받게 될 게 뻔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공정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원리에 위배될 개연성이 있을 뿐더러, 택배시장의 질서 붕괴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택배기사들의 이직 및 생업포기로 인한 실업자 양산과 20년간 생활물류로 자리 잡은 택배서비스의 중단사태 발생이 우려된다는 업계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농협이 택배시장에 진입할 경우 공기업으로 구축해놓은 전국의 하나로마트를 택배영업소와 취급점 등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공익과 농민의 이익을 위
해 만들어 놓은 공공시설물을 수익사업인 택배사업에 활용하게 되는 것으로 설립 목적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과 방침에 역행하는 농협

지난해 경제계에서 핫 키워드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바로 ‘일감몰아주기’다.
정부는 대기업 일감몰아주기를 비난하며 이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섰다. 이로 인해 많은 업체들이 일부 물량을 외부 업체에 아웃소싱 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농협의 택배사업 진출은 정부 스스로 일감몰아주기를 자행하는 것으로,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의 또 다른 전횡의 사례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성엽 의원 역시 “농협은 국내 농수축산물의 전국 유통을 맡고 있어 이들의 물량이 농협택배로 독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부터 AT센터,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각 지자체에서 인터넷 쇼핑몰 구축 등을 통해 택배물량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으나 이 물동량 역시 대부분 농협이 독식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는 최근 방만경영·과다부채로 인한 공공기관 체질 개선에 나선 가운데 이번에는 민간기업과 중복되는 유사 사업에서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공기업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사회 부정적 시각에 부응해 민간기업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공공기관의 사업을 줄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정부 한쪽에선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고, 민간기업과의 경합 자제를 추진하는데 농협은 이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정부 방침이 오락가락하는데 민간 기업들은 누구를 의지할 수 있겠냐”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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