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타의 비결 5

 

장타의 비결은 연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휴식에도 있다고 했다. 고된 연습이 있었다면 충분한 휴식으로 신체의 밸런스(balance)를 잘 유지해야 기량을 100% 이상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은 정칠기삼(精七技三)과 같다고 하면서 기술 보다 정신이 더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도 했다. 정신력 강화를 위해 역사상 최고(最古)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을 인간의 조건으로 가슴에 새기면 정체성(正體性)이 분명해진다는 말도 했다.

인간이 어째서 만물의 영장이며 하나하나가 소우주요 궁극적으로는 독립된 형태인가를 나름대로 설명했다.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은 주인공답게 자기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요, 훌륭한 골프 역시 내가 주연(主演)이라며 자기 공만 열심히 치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어떠한 삶의 동반도 사랑하고 존중하고 칭찬해야 할 대상이지 미워하고 배척하고 동정하는 따위 차별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덧붙였다.

천부경의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이란 대목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쓰고 변화해도 근본은 그대로라는 말인데, 기운을 쓰던 재물을 나누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릇은 그대로라는 말도 된다. 돈도 잘 쓰는 사람이 잘 버는 법이요 골프도 자주 나가는 사람이 (피곤해하기는커녕) 더 활달하고 잘 치지 않는가. 순환이 활발하면 그만큼 모든 면에서 쾌적해진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는 말이 있다. 16세기 영국의 금융가였던 토머스 그레샴(Thomas Gresham)이 남긴 어록 “bad money will drive good money out of circulation”이 원문이다. 뜻은 좋은 품질의 금융상품과 나쁜 품질의 금융상품이 동시에 시장에 존재할 때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만 남고 좋은 상품은 사라진다는 말이다.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품질이 좋은 안전 상품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품질 낮은 투기성 상품만 남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 말이 사회적으로는 청렴하고 공명정대하고 자질 높은 사람과 교활하게 장난치는 저질 사람이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은 물러나고 악착같은 사람만 남게 된다는 의미로도 활용된다. 오늘의 골프 세계도 이 말을 음미하며 반성할 요소가 많아진 것은 아닐까? 특히 내기에 지나치게 중독되어 과정보다 결과(승부)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겐.

프로든 아마추어든 골프에서 상대를 의식한 플레이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를 의식하고 경쟁하는 자세로 사는 것처럼 더 건조한 인생은 없다. 피겨 스케이트의 여왕 김연아나 마린보이 박태환 등 정상에 올라서 본 인물들이 앞으로는 오직 기록 경신이 목표라고 말하는 것은 금메달을 넘어서야 깨달을 수 있는 ‘경지에서 얻은 열매’로 믿어진다.

‘내가 참가한 골프의 중심은 나’라는 인식을 일차적으로 확고히 하고, 함께 하는 이들과 (경쟁하기보다)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할 때 인생도 골프도 즐거움이 배가하며, 그렇게 되면 자연히 어깨에 힘이 들어갈 일이 없어 저마다 장타를 날리게 되는 것이다.
 

▲ 골프스윙은 백인백색이다. 그러나 프로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잘 치는 사람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피니시(finish) 요령이다. 자세가 같은 것은 물론, 피니시에서 의식적으로 그립을 약간 세게 잡는 것이 장타의 비결이다.

그리고 지난 호에서는 정체성 논리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프랙털(fractal) 구조를 소개하면서 모든 사물은 크고 작은 반복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하나하나 따로 떼어내서 보면 규칙 없는 조각 같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프랙털들은 우연(chance)과 관련이 있으며, 그런 규칙성과 불규칙성은 모두 다 통계적(statistical)이라는 점에서 집합을 이룬다고 했다.

 

유사한 사례는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바둑 세계에 만 번을 두어도 같은 국면은 없다는 말이 있고, 골프 역시 만 번을 휘둘러도 같은 조건에서 똑 같이 공이 날아가는 샷은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2년 11월 18일 현재 세계 인구(실시간)는 70억 52,925,685명이다. 70억 넘는 사람 중에 스토리가 같은 사람이 다만 한 쌍이라도 있을까? 하지만 원리적인 면에서 같고 통계적인 면에서 또한 차이가 없다. 대동소이(大同小異)란 말이 이럴 때처럼 어울리는 경우도 드물 것 같다.

반추해보자. 하루 처세하는 삶에 한 달의 모습이 담겨있다. 한 달을 보면 일 년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 일 년 일 년이 돌고 돌면서 일생이 된다. 골프를 보자. 한 홀에 9홀 모습이 있다. 9홀 도는 것을 보면 18홀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 라운드가 무수히 반복되며 골프가 된다. 한마디로 골프는 상황에 따른 크고 작은 샷의 반복이요, 인생은 순간순간 이루어지는 만남의 대한 처세의 반복이다. 노련한 사람은 한두 번 샷 하는 것만 보고도 저 사람 핸디캡이 얼마다 하는 것을 거의 정확히 가늠한다. 자신 있게 베팅하는 것이다. 
 
프랙털에서 제기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논란은 줄기세포 원리를 참고하면 달걀 쪽에 무게를 두게 된다. 줄기 세포는 태초에 정해진 조건으로 자체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치명적 질환을 물리치고 조직을 재생하는 데 이용된다. 오염되지 않은 작은 세포가 생성을 반복하며 성장함으로써 후천적 오염을 구축(驅逐)하고 건강한 신체로 재건하는 것이다. 혈액의 일부를 추출하여 정화시킨 뒤 체내에 주입하는 것으로 혈액 전체를 맑게 하여 질병을 치료하고 노화를 방지하는 ‘혈액정화요법’도 마찬가지 원리이며, DNA로 공룡을 재생, 쥬라기 공원을 만들 수 있는 상상력도 가장 작은 단위의 세포가 먼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는 식의 시계추 논리는 남는다. 모든 사물은 잠시 존재하는 것일 뿐 근본은 무(無)이거나 공(空)이다. 인간의 마음도 결국은 비어있는 중심에 머물기를 갈구하고, 골프도 오래 하다보면 중간만 되면 좋겠다는 희망이 기본이 된다.
마음은 그렇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요, 골프다. 실제에 있어서는 항상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좋은 성적을 향하여, 혹은 이르지 못할 기량의 완성을 향하여 욕심을 부리고 열정을 다하게 된다.

그러다가 실망하고 자학하고, 다시 기분을 추슬러 도전하고, 또 한계 운운하며 체념하기를 반복한다. 마치 씨와 열매처럼 스스로는 자성(自性)이 없이 공하지만, 씨가 자신을 죽여 열매를 맺고 열매가 자신을 썩혀 씨를 만들듯 공(空)이 생멸변화의 조건인 진리를 외면한다.

염원했던 싱글을 달성한 후 90대로 밀려나는 일이나, 아마추어에게 꿈의 숫자라는 언더를 기록한 후 어처구니없게 월백(越百)하는 것은, 막상 목표에 도달해 보면 그토록 추구한 대상의 의미가 사라지고 성취감 역시 순간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기 때문 아닐까.

그러나 순간의 성취는 다른 시간들과 독립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찰나의 순간에도 무한한 시간이 겹쳐져 있다. 내일 이 코스에서 다시 언더를 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차이를 갖는다. 들뢰즈의 지적대로 시간이 모든 반복에 차이를 새겨 넣기 때문이다. 시간은 언제나 기수적(基數的 : cardinal)이기를 거부한다. 서수적(序數的 : ordinal)이기에 서로 어울리면서도 뒤섞이지 않는 것이다.

시계추는 태엽이 풀려야 비로소 가운데 멈춘다. 태엽이 풀리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면 살아서 도달하지 못할 목표 아닌가. 꼭 그렇지 않다. 호흡 수련을 통해 살아서도 도달할 수 있다. 다음 호 호흡(呼吸) 편과 그 다음 운기(運氣) 편에서 장타의 비결을 완성하도록 하자. 

저작권자 © 물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