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택배기사의 하루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각 분야별로 한 해 실적을 분석해 보고 한 해 동안 어느 분야가 좋은 성과를 냈고 또 어떤 분야 실적이 가장 부진했는지 비교 분석 자료가 많이 나오게 된다.
이런 자료는 대부분 증권사에서 나오며 내년도 주식시장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 하는 자료로 많이 활용 되는 편이다.

아시다시피 필자는 증권사에 있지도 않고 애널리스트도 아니다. 그래서 필자가 애널리스트처럼 주식이 어떻게 되는지 예측 할 수는 없지만 홈쇼핑 SCM 분야에서 10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필자가 애널리스트처럼 그래프와 수년간의 데이터를 차트화해서 멋있게 보여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홈쇼핑의 고객 서비스를 결정하게 되는 택배 접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현장의 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그 현장감을 바탕으로 ‘2012년 오늘, 택배기사의 하루’를 언급하면서 2013년 택배기사의 하루도 예측해 볼 생각이다. 그 전에 먼저 이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관련 분야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은 어느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택배분야가 택배만 따로 떼어놓고 실적을 분석하거나 앞으로의 전망을 예측할 수는 없다. 2012년 현재 대한민국의 택배시장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 있는 분야는 유통이다.

특히 홈쇼핑을 선두로 하는 온라인쇼핑 분야가 대한민국 택배시장을 좌지우지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홈쇼핑 택배계약을 어느 택배회사와 하느냐에 따라 택배회사 순위가 뒤바뀔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현재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택배회사 입장에서는 홈쇼핑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신규 홈쇼핑이 새로 등장했고 CJ GLS가 주관 택배회사로 선정이 되면서 이제 한 그룹이 되었지만 CJ대한통운과 CJ GLS가 홈쇼핑 택배서비스를 주도하는 BIG 2가 되었다. 이 두 회사가 내년에 한 회사로 재탄생이 되면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하여 다들 궁금해 하시는 것 같아 언젠가 한 번 이 칼럼을 통해 언급하도록 하겠다.

자, 그럼 홈쇼핑을 포함해서 올 한해 유통업이 어떤 성적을 냈는지 성적표를 한번 보도록 하자. 지금 순간만큼은 애널리스트의 관점으로 아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아직 2012년을 결산할 수는 없지만 3분기까지 누계실적으로 보면 역시 한 눈에 들어온다.
지금이 역시 ‘홈쇼핑 전성시대’인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물론 편의점이 올해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창업 열풍이 불었고 그 열풍이 고스란히 실적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2012년 전체 홈쇼핑 시장은 15% 내외의 성장을 이룬 것 같다. 홈쇼핑이 경기불황일수록 잘 된다고 하는 속설이 수치로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택배시장의 올 한해 성장률을 보통 10% 정도로 예측하는데 그 10% 성장의 배경에는 홈쇼핑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이면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필자가 보는 관점은 사회 전반적인 4가지의 트렌드가 아닐까 싶다.

오늘 주제가 2012년 유통 실적과 트렌드가 아니기 때문에 이쯤에서 오늘 주제로 다시 돌아와 2012년 사회 트렌드가 고객 접점인 우리 택배 현장에 어떤 파생 효과를 미쳤는지 그로 인해서 택배기사의 하루가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홈쇼핑을 필두로 한 온라인쇼핑의 성장세는 바로 택배 물동량의 증가를 의미한다. 특히 올해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한 층 더 강화되면서 대형마트 역시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이라 할 수 있는 온라인쇼핑몰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온라인쇼핑 택배 물동량은 20% 이상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라고 가정하고 택배기사 당 하루 물동량 증가로 환산해보면 최소한으로 계산해도 20개~30개 정도가 된다. 2011년에 택배기사가 하루에 100개를 배송했다면 2012년 올해는 120개~130개를 배송한다는 이야기다.

현재 택배기사의 일일 물동량은 수도권 중심으로 보면 150개 내외가 된다. 150개 중에서 B2C 물동량을 대략 7:3정도로 가정해 보면 (택배회사마다 이 수치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택배회사가 어느 곳에 집중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100개가 기업화주의 물동량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자,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모두가 택배기사라고 상상해 보고 가칭 홍길동 택배기사의 하루를 시작해 보자.

『오늘은 월요일이라 그나마 물량이 가정 적은 날이라 집에 도착해서 9시 정도에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저녁 먹고 아이들이랑 좀 놀아주고 아내랑 차 한 잔 할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는 평일이기도 하다. 보통 직장인은 월요일을 가장 싫어하지만 우리 택배기사들은 월요일이 가장 좋다. 그 대신 화요일은 한마디로 거의 죽음이다. 어서 빨리 자야겠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빨리 씻고 이것저것 챙겨서 곤히 잠자고 있는 아이들이랑 아내 얼굴을 보면서 집을 나왔다. 날씨가 흐린 것이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오늘 비오면 안 되는데…’
6시 30분 터미널에 도착. 역시 나보다 먼저 와 있는 동료들이 많이 있다. 삼삼오오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달달한 모닝커피를 한잔했다.

자,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11톤 간선차에서 화요일답게 엄청난 물량이 내 앞을 지나간다. 올 겨울 유난히 춥다고 하고 경기도 안 좋고 해서 그런지 전기매트가 정말 많이 팔리는 것 같다. 차에 몇 대 실리지도 않는데, 제발 오늘은 몇 개 없어야 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가 배송할 물건 다 챙겨보니 200개가 넘는다. 게다가 매트가 3개나 있다. 매트 실을 공간이 없다. 따로 빼놔야지. 우리 팀으로 온 매트가 12개나 된다.

배달표를 정리해 볼까. 홈쇼핑 물량이 역시나 많다. 홈쇼핑 같은 대형 화주 물건은 한 번 더 챙겨야 한다. 홈쇼핑이나 대형화주마다 요구하는 서비스가 달라서 그게 우리 같은 택배기사들을 너무 헷갈리게 한다. 어떻게 다 기억하라는 건지!

근데 이건 처음 보는 주소다. 전화해야겠다. 처음 배송하는 거 잘못하면 대부분 클레임이다.
배달표 정리하고, 전화하고, 반품송장 확인하고, 쉴 새 없이 정리했는데도 11시네! 오늘은 점심 먹을 시간 없으니까 나가면서 간단히 먹고 가야겠다.

11시30분 첫 집에 도착했다. 이 고객은 늘 이 시간에는 집에 없다. 그래서 매번 경비실에 맡긴다. 오늘은 홈쇼핑에서 갈비를 사신 것 같다. 냉동식품이라 한번 더 챙겨야지. 문자 전송 완료~~!

냉동식품을 경비실에 맡기고 전화나 문자 같은 연락을 안 해 주면 클레임이 걸리니깐 챙겨야 한다. 이 고객은 단골이라 큰 걱정은 없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만 10개를 배송했다. 대부분 집에 사람이 없어서 7개를 경비실에 맡겼다.
출발이 좋은 편이다. 그런데 11번째가 문제다. 핸드폰도 안 받고 처음 가는 집인데 빌라라 경비실이 없다. 쇼핑몰에서 옷을 산 것 같은데 임의배송 할 때가 없어 그냥 가야겠다. 나중에 전화되면 ‘내일 배송한다’고 말해야겠다.

이렇게 이번 화요일도 많은 변수가 있었지만 무사히 잘 마쳤다. 배송 못한 건이 5건이고 가지고 나가지 않은 매트가 3개가 있지만 별 클레임 없이 하루가 갔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코앞이다. 아이들은 자고 있고 아내가 드라마를 보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역시 집사람과 아이들은 나의 가장 큰 희망이다.

빨리 씻고 자야지. 내일도 수요일이라 물량이 만만치 않은데…….』

상상으로 시작한 택배기사의 화요일이라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실제 노동 강도는 상상 이상이다. 힘들게 고생해도 합당한 노동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충분히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우리 택배기사를 견디게 하는 것은 바로 ‘가족의 행복’이라는 가치가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소중하지만 노동 강도가 높은 곳 일수록 그 가치가 지탱하는 힘은 무한대인 것 같다. 필자 역시 택배품질을 책임지고 있는 터라 택배기사의 일상에 무척 관심이 많은 편이다.

홍길동 택배기사의 하루 중에서 특히 ‘홈쇼핑이나 대형화주마다 요구하는 서비스가 달라서 헷갈릴 때가 많다’라는 말에 너무나 동감한다. 이제까지 경쟁사보다 좀 더 차별화되고 뛰어난 서비스를 누구보다도 많이 요구하고 있었기에 많은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내년 택배품질 전략을 완전히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방향은 ‘Back to the basic’이다.

이를 포함해 다음 칼럼에서는 ‘2013 유통 및 물류 시장 예측’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할까 한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다. ‘여름이 더울수록 겨울은 더 춥다’고 하니 다들 월동 준비 철저히 하시길 바란다. 나도 친절 택배기사들에게 핫팩을 선물로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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